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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Jul 11. 2023

이혼이 두려운 당신에게

당신이 소중한 사람임을 잊지 않았으면

비가 왔다. 지난주에 엄마집에 보낸 자동차 방향제 생각이 났다. 라벤더랑 몇 가지를 보냈는데 전해 듣기로는 엄마는 레인포레스트 미스트가 제일 맘에 든다고 했다. 아침 안부를 겸하여 전화를 걸었고 향이 제법 괜찮더라는 얘기를 듣던 중 옆에서 아빠가 자기 휴대폰 어디 있냐고 묻는 소리가 났고 엄마의 핀잔이 뒤를 잇길래 통화를 종료하고 아빠한테 전화했다.


"어, 와 전화했노?"


아빠가 방금 휴대폰 찾길래 전화 걸었다 하니 아빠는 고맙다시며 늘 하던 당부를 잊지도 않고 또 했다. 잘 지내라, 건강 잘 챙기고. 지혜롭게 현명하게 살자.


내가 잠이 덜 깨서 그랬을까. 지혜롭게 현명하게 살라는 아빠 말에 이런 대답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래서 이혼했잖아.

나중에 내 딸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면 나는 무슨 기분이 들까. 아빠는 "그래." 하고 대답하셨고, 다시 들어가라며 인사 후 전화를 끊었다. 아빠도, 나도, 이제 내가 이혼했고 남편이 없다는 여전히 새로운 사실에 이렇게 또 한 번 익숙해지는 중이리라.




익숙함이란 때로는 그리움이고, 때로는 권태로움이다. 그래서 낯섦 역시 때로는 설렘으로, 때로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내가 이혼할 때, 그리고 그가 이혼을 거절할 때 우리가 동시에 느낀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불편한 권태에 절여진 결혼생활이었을지언정 우리는 긴 시간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고, 겪어 본 적 없는 이혼에 대한 두려움은 그 일상적이지 않은 사건을 상상하는 것조차도 몹시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두려움만큼이나 큰 용기가, 아니, 두려움보다 조금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이혼을 지나면서 최근까지 나는 당시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다며 아우성이었기 때문에 감히 사모님 소리를 듣다가 끝내 썅썅바 여자가 될 결심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나더러 용기가 대단하다며 누군가 남긴 댓글을 봤을 때도 나는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광기였다고 아무도 볼 수 없는 대댓글을 달았었다.


그런데 지나 보니 그 댓글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물론 나만 볼 수 있었던 대댓글 역시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내가 낸 것은 광기에 가까운 용기였다. 익숙한 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설령 그 익숙함이 불편할지라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익숙함일수록 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그런 용기를 낼 만큼 대단히 아팠고, 대단히 용감했다.  


괴로움만큼 조금씩 커지던 결심을 드러냈을 때 받은 지지와 응원 덕분에 안개 같고 아지랑이 같던 용기가 단단히 응집되었다. 도비의 성냥개비 시를 읽고 대신 화를 많이 내 줬던 친구, 내가 슬퍼서 속상하다며 울어 주었던 언니, 금융치료 하라고 돈을 보내 준 동생, 제 머리를 감싸며 눈물을 글썽여 주었던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친구, 소중한 퇴근을 미뤄가며 안부 전화를 해 준 친구, 그리고 그들이 보내온 따뜻한 눈빛들.


그들의 기억 속 나는 좋은 사람이었고,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었고,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나는 이제 남편의 피곤하다는 눈빛과 몸짓에 지쳐 생기를 잃고 살았던 과거를, 그것이 다 내 잘못이라고 여기며 살았던, 아직도 떠올리면 눈물이 나는 지난날을 돌아보지 않으려 한다. 익숙함이 언제나 아련하고 푸근한 그리움을 뜻하지는 않으니 나는 나를 위해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내 친구, 맞벌이에다 아이도 있는데 벌써 몇 년째 생활비 한 푼 주지 않는 사람과 살다 맞아서 뼈가 부러졌다는 내 친구. 가서 똑같이 뼈를 때려 주고 싶은 남편과 사는, 유일하게 내 이혼 결심을 돌리고 싶어한 그 친구에게도 나는 이혼을 권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친구에게 말해 주었다,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너는 그것보다는 더 나은 대우을 받으며 살아도 되는 사람이야. 너라는 사람의 소중함을 잘 존중받으며 살면 좋겠어. 니가 행복하면 좋겠다.


힘든 결정을 하느라 괴로워하는 내게 잘못이 없다고 해 주었던 변호사님,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 준 병원 교수님, 대문자 F인 나의 앞날을 염려해 준 파워 T 친구들이 있어 나는 주저앉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당신이 유책 배우자가 아니라면, 그리고 스스로 결심이 분명하다면, 그런데 부끄럽고 용기가 없다면, 주변에 위로의 말을 해 줄 사람이 없다면, 당신이 도비의 글을 친구 삼으면 좋겠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다. 당신이 소중한 것 같지 않더라도, 당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없는 것 같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이 불행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익숙함을 버텨 낼 근성과 인내심이 생겨도 좋겠다. 익숙함을 바꿔 낼 용기가 생겨도 좋겠다. 어느 쪽이든 당신이 지금보다 행복에 더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나에게도 독자님에게도 돈이 안 되는 도비의 글은 우리 인생에 아무 책임도 져 주지 않는다. 당신이 뭔가를 결심한다면 그 결과는 당신이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여전히 이혼이라면, 결코 경제적 어려움이나 돌봄의 구멍을 메울 대책도 없이 무턱대고 저질러서는 안 된다. 책임져야 할 자녀가 있을 땐 더 신중해야 한다. 그러니 이혼을 두려워하고 고민하는 중에도 울고만 있지 말고 여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그동안 배우자를 탓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더 이상 남을 탓할 수 없다. 지금부터 내리는 결정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고, 당신의 책임이다. 나는 그저 당신이 행복하기를 빌어 줄 뿐이다. 당신의 곁에는 분명 당신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혹여 주변에 누구 하나 없다면, 당신 스스로가 당신의 편이 되어 주길 바란다. 자신의 소중함을 의심하지 말고, 길고 어두운 터널을 잘 지나가길 바란다. 터널 끝 밝은 빛을 꼭 만나기 바란다.


살아서 잘 버틴 내가 나는 참 대견하다.



TMI 대방출. 나는 아직 못 맡아 봤지만 엄마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제목 이미지 출처=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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