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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Jul 17. 2023

사위가 없어져서 부끄러운가요

칠순 가족사진을 못 걸어 놓겠다는 우리 엄마

입고 거울을 봤을 때 스스로도 오오 감탄하게 되는 옷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다. 그런데 주말에 그런 원피스를 만났다. 일시불 요정인 나는 (많이 비싼 건 잘 안 산다는 뜻이다) 할부로 사야 할 것 같은 새까만 니트 원피스가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충동구매가 될까 봐 꿈에 나올지 안 나올지 지켜보려고 그냥 집에 왔다.


오늘 밥 먹고 엄마랑 통화하다가 원피스 얘기를 했다. 수고한 나에게 상을 주고 싶은데 입고 갈 데가 없다, 친구들도 얼추 다 결혼했고, 죽을 사람이 없어서 장례식 갈 일도 없고, 엄마 칠순 사진 찍을 때 입을까 그랬더니 엄마가 찍으려던 가족사진을 안 찍을까 싶다고 했다. 찍고 싶다더니 왜 그러냐 물으니까 형부도 오고 조카도 올 텐데 공주랑 왕자가 자기 아빠만 없으면 속상할까 봐 그런단다. 아휴.


"엄마,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애들한테 좀 미안하지만 그래도 그건 아이들이 갖고 가야 할 문제야. 앞으로도 살면서 이런 순간이 얼마나 많겠어. 안 그래? 가끔 같이 밥 먹고 나들이 가는 걸로도, 상대방 없을 때 험담 안 하는 걸로도 어른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과 노력은 다하는 거니까, 엄마가 그런 거까지는 생각 안 해도 괜찮아. 그냥 찍어요, 애들한테는 내가 잘 말할게."


사진 찍을 때 공주 아빠를 불러서 같이 찍고 밥도 먹고 가면 어떨까도 싶다며 깜찍한 생각을 하시길래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노인이 된 우리 엄마가 괜히 또 생각이 많아졌구나 싶던 순간 문득 뭔가 뇌리를 스쳤다.


"엄마, 맨날 찍는 것도 아니고 가끔인데 그냥 찍어서 잘 걸어 놓으면 되지, 뭐."


그랬더니 엄마가 하는 말.


"걸어 놓기는 좀 그렇고."


굳이 그럴 필요 없었는데 괜히 물었다. 그러니까 칠순이라고 가족사진을 단체로 찍었는데, 딸이랑 손주들은 있는데 사위가 없어서 짝이 안 맞으면 이상하지 않은가. 집에 온 손님들이 다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그럼 내 이혼 사실을 말하거나 거짓으로 이유를 꾸며내야 하니까 둘 다 불편할 엄마는 찍은 사진을 걸어 놓지 않으려는 거다.


혹시 나 이혼해서 그러냐고, 나는 걸어 놔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사람들 보기 좀 그래서 그러냐고 놀리듯 물었더니 엄마 목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커지면서 그런 건 아니란다. 아무래도 그 이유가 맞는 것 같았다. 뇌피셜이지만 엄마 성격을 고려하면 내 짐작은 틀리지 않을 테니 오늘 하루 정도만 약간 죄인 모드로 살기로 했다. 내가 괜찮다고 해서 엄마까지 괜찮을 수는 없으니까. 엄마의 마음은 내 마음과는 별개니까.


미안해요, 엄마.

언젠가는 엄마에게도 내 발칙한 이혼 일지를 보여 줄 날이 오면 좋겠어요. 그러면 엄마도 생각할 거예요. 없어진 게 딸이 아니라 사위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이에요.




그래서 볼 때는 그냥 그랬는데 입으니까 너무 찰떡이던 그 새까만 니트 원피스는 어떻게 되었는가?

샀다. 

꿈에 나와서 산 건 아니고, 엄마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예쁜 거 입고 행복하라길래, 나이 들어 보니 그런 시간도 다 한때니까 할 수 있을 때 하라길래. 그리고 인터넷으로 쿠폰 쓰니까 조금 저렴해지길래.



(가끔 쓰는 걸 까먹지만 그래도 이미지 출처=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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