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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Jul 29. 2023

아빠와 함께 커피를

근데 이제 조각케이크 대신 뉘우침과 나무람을 페어링 한.

집에 커피가 떨어져서 동생이 추천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이었다. 라이딩 나왔는데 너는 무슨 카페 어디 있냐더니 사장님 전화 바꿔 길을 묻던 우리 아빠.


핸드드립 아이스 아메리카노 먹다가 사장님이 서비스로 뭘 한 잔 주셨는데 어째 커피가 아주 특이하고 매력적이었다. 아빠랑 나눠 먹고 싶어 애써 커피를 남긴 후 책에 집중하려던 차, 저 멀리 푸른 논 뒤로 뙤약볕을 아랑곳 않고 자전거 타는 노인이 등장했다.


"이 더운 날에 자전거 타는 사람이 있네?"


예상 못한 라이더의 출현에 사장님 지인인 듯한 분이 놀라니 사장님이 얼른 손님 아버지라고 알리셨다. 노인이 마침내 카페에 도착했다.


"아빠, 이거 마셔 봐. 처음 먹어 보는 신기한 맛이 나."


딱히 눈알이 띠용 튀어나오지는 않는 맛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양이 많아 아직 한참 남았고, 내가 다 마셔 버릴까 봐 사장님한테 받은 커피부터 아빠에게 권했다. 사장님이 에스프레소 잔 사이즈의 비커 하나랑 커피잔을 들고 오시더니 시간을 길게 해서 진하게 내린 커피라며 물에다 천천히 커피를 붓는데 신기하게도 꿀차 탈 때처럼 물 아래로 커피가 가라앉더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리고 제1잔 아메리카노, 제2잔 신기한 커피에 이어 제3잔으로 아인슈페너를 주문했다. 원래도 혼자 아메리카노랑 아인슈페너 각 1잔을 마실 예정이었지만, 이건 아인슈페너를 못 마셔 본 아빠를 위해서야 라며 주문한 커피를 아빠는 맛있어하셨다.


우리가 그렇게 노닥거리고 있으니 사장님과 지인분이 괜히 흐뭇했나 보다. 아빠랑 딸이랑 카페에 와서 같이 커피 마시는 모습이 아주 좋아 보인다고 했다.


사실 ‘아빠는 엄마한테 잘못한 게 많다’는 주제로 얘기를 나누던 참이었다. 먼저 얘기를 꺼낸 건 아빠, 맞장구를 열심히 치는 건 나. 맞아, 아빠가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총 가사와 육아량 대비 아빠의 기여도가 너무너무 낮은 게 사실이지.


그 순간 거짓말처럼 아빠폰에 애칭으로 저장된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는 아이고 어떡해요 얼른 갈게 그래 그래를 연발하시더니 전화를 끊으셨다. 갑자기 아무개 손님이 들이닥친다는데 지금 어디냐고, 손님한테 오지 말라는 말도 못 하는 성격의 엄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다길래 나도 덩달아 화들짝 놀라 남은 커피를 단번에 들이켰다.


"니가 먼저 가서 얼른 청소 시작해라, 이런 거 얘기한 거는 엄마한테는 모른 척하고. 알겠제?"


하필이면 차에 안 실리는 자전거를 타고 온 아빠. 먼저 가서 잘 처신하라길래 네네 그랬더니 또 운전 조심해서 가란다. 글쎄다. 칠십 몇 살 먹고서 자전거로 귀가하는 노인에게 들을 말은 아닌 듯했다만. 그래서 나는 괜히 자동차 운전자한테 피해 줘서 한문철에 나오지 않게 운전 잘 해서 오라고 했다.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아. 패륜.  

안 먹는다고 시키지 말라더니, 아인슈페너는 아빠 입맛에도 역시 딱이야.



여담


“엄마, 거기 커피 괜찮더라. 그리고 거기 사장님이 무슨 커피를 한 잔 그냥 내오셨거든? 그게 대박이었어.”

“커피를 한 잔을 그냥 줬다고? 우리는 여러 번 가도 한 번도 그런 일 없었는데, 야, 너가 예뻐서 그랬나 보다.”


사장님 여사님이신 거 뻔히 알면서 그런다. 엄마들은 다 고슴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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