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처럼 숨은 나란 이혼녀
아이들과 친정에서 멀지 않은 캠핑장에 갔을 때였다. 도착해서 막 계곡에서 놀다 애들 사진 찍으려는데 휴대폰을 차에 두고 온 사실을 깨달았다. 얼른 다녀올게, 하고선 주차장으로 돌아가다 캠핑장 입구 앞에서 익숙한 옆모습을 봤다. 어려서부터 집안끼리 알았던 그 언니네 남편을 닮은 남자였다.
땀이 나서 벗었던 선글라스와 모자를 다시 눌러쓰고는 혹시나 싶어 발걸음 옮기는 속도를 줄였다. 마주 선 여자애들의 얼굴이 점점 선명히 보였다. 키는 몰라보게 자랐으나 어렸을 적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서로 꼭 닮은 두 자매를 보니 쭈그리고 앉아 짐 정리를 하는 여자는 그 언니가 분명했다. 간이 쪼그라들었다.
언니가 볼세라 얼른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바로 뒤에서 들뜬 여자애들 목소리가 나를 따라왔다. 빨리감기 하듯 잰걸음으로 차에 들어가 휴대폰을 챙기고 한숨 돌리기도 잠시. 조금 뒤 도착한 언니네 아이들이 내 차 옆옆 자리에 주차된 차 앞에 가서 섰다.
설마 설마 했는데, 좁지도 않은 그 주차장에서 하필이면 그게 언니네 차였다. 내 차는 선탠이 되게 짙지는 않아서 나는 운전대에 엎으려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노래를 틀어놓고 부디 언니네 단란한 가족이 빨리 물놀이용품, 캠핑용품을 다 정리하고 차에 싣기를 기다렸다. 무려 20분을.
언니네 차가 주차장을 다 빠져나가는 걸 확인한 후 부랴부랴 아이들에게로 돌아갔다. 우물 만들기와 물수제비 뜨기가 즐거웠던지, 다행히 아이들은 내가 30분 넘게 자리 비운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이들을 돌봐 준 동생에게는 미안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근데 내가 인사가 하기 싫더라고. 언니가 반갑게 인사하고 남편 안부도 묻고 할까 봐. 대답하기 좀 그래서. 엄마 아빠도 생각을 안 할 수 없고. 그래서 언니네 갈 때까지 차에 숨어 있느라고 오래 걸렸어."
변호사님은 분명 나더러 아무 잘못이 없다고 했는데, 친구들도 다 그렇게 얘기했었는데, 나는 언니네가 자리를 완전히 뜰 때까지 차 안에서 바퀴벌레처럼 숨죽이고 있었다. 심장은 벌렁벌렁 나댔고 말이다.
이번에 엄마한테 들었는데 이모들과 지인들 중 그 누구도 내 이혼 소식을 모른단다.
요즘 세상에 이혼은 흠도 아니라고? 남들 다 하는 거라고? 아니다. 우리 사는 세상은 이혼이 쌍꺼풀 수술 같아지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
도비는 쌍수는 안 했다. 하지만 이혼은 했다. 나도 쌍수나 할걸. 쌍수야말로 흠이 아닌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