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여러 번 해 봤어요(눈 찡긋)
이 주접의 발단은 이러하다.
때는 작년 여름, 포켓몬 빵을 사러 세븐일레븐에 가서 트럭이 오기를 기다리던 밤 11시였다. 이따금 연락 닿으면 책 얘기를 하던 친구의 추천으로 생판 모르고 살던 천명관이라는 작가님의 <얼린 취킨과 달리는 노동자>인가를 읽고 있었다.
온다는 트럭은 오지 않고, 재밌었다는 작가의 책은 너무 수컷 수컷하여 집중이 잘 안 되고, 하여 냉장코너로 가 행사 중인 블랑1664를 주섬주섬 바구니에 담는데 언제 들어왔는지 앳된 남자 둘이서 빛보다도 빠르게 소주 한 병을 집어 들고는 계산대로 향했다.
한 발짝 뒤에 서서 소주 계산 끝나기를 기다리는데, 이제는 낯이 좀 익은 사장님이 먼저 줄 선 남자 손님들에게 신분증 확인을 부탁했고, 남자 중 하나가 지갑에서 운전면허증을 꺼내서 내밀었다가 다시 지갑에 넣었다.
일순간 그들의 젊음이 부러웠다. 장마처럼 눈물이 쏟아지던 <나의 발칙한 이혼 일지>를 쓰던 그 여름은 (여러분, 저도 깜빡하고 사는데 그거 쓴 사람 제가 맞습니다!) 어린 친구들이 마냥 다 예뻐 보이던 계절이었고, 그래서 내 맥주 바코드를 찍는 사장님 앞에서 나도 모르게 턱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헛소리를 하고 말았다.
제 신분증도 확인해 주셔도 되는데.
코로 웃음을 내뿜는 사장님을 보며 나는 내심 뿌듯했다. 남은 밤이 아직 길고 긴 밤 11시, 사장님과 실없이 한 번 웃는 그 순간 나는 나이 듦의 서러움과 이혼 앞둔 서글픔을 잠시 떨쳐낼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보틀샵에서도, 편의점에서도, 백화점에서도, 같이 간 사람조차 치를 떨게 만드는 주접을 떨게
된 것은. 궁금하진 않으시겠지만, 사장님이나 직원분들은 다들 즐거워했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발을 두 번째 들여놓을 때 그들이 나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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