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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Aug 09. 2023

그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

까망은 실패하지 않아. 칭찬도 그렇지.


오랜만에 만난 나의 남자 사람 친구는 ‘그날 도비가 진짜 예뻤다’는 말로 15년 전의 어느 여름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친구에게는 내가 까만 원피스를 입은 날이었고, 나에게는 홍대 놀이터 앞 거리를 걷다 쌈디 님을 만난 날이었다.


그 옷은 아직 옷장에 있다. 소나무 같은 나의 취향.


반쯤 배불뚝이 아저씨가 된 친구를 만난 날, 친구 입에서 내가 좋아할 것 같아 까만 옷을 입고 나왔다는 헛소리를 들을 만큼 나는 곧잘 까만 옷을 입곤 했다.


작년에 듣고 가장 기분 좋았던 칭찬을 들은 날도 까만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엘베에서 어떤 꼬마와 눈이 마주쳐 웃으며 인사했더니 그 여자애가 나를—아마도 내가 입은 옷을—보고는 “이웃나라 왕자님이 반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옷보다 열 배는 더 맘에 드는 칭찬이었다.


“남편이 업서요? 이러케 예쁜데?”라던 그 일본에서 온 프랑스 남자의 말이 아니었다면 아마 관짝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기억하고 싶은 말 1위는 이웃나라 왕자님이 어쩌고 하는 칭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왕자님 보라고 입은 게 아니라며 잘라 말한 나란 동심 파괴자.)


이쯤 되면 도비가 예쁜 줄 단단히 오해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재차 말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브런치 도비가 누구인지 아는 친구들이 있어서 이 부분은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도비는 예쁜이도, 멋쟁이도 아니고, 그냥 주접떠는 마력 정도가 있는 사람이다. (친구가 자기객관화를 좀 해야 한대서 여기까진 인정.)


아무튼 칭찬에 취약한 나란 사람은 가아끔 포근한 칭찬을 듣거나 고운 기억이 생기면 세월의 영향을 받지 않는 텀블러에 담아 고이 간직하곤 한다. 그러다 어쩐지 조금 울적한 날, 살포시 뚜껑을 열어 들여다보며 다시 미소 짓고 나아갈 힘을 얻는다.


현생에 치여 살더라도 모두들 일주일에 한 번쯤은 제법 잘 어울리게 옷을 입어 보자. 그리고 하루에 한 번쯤은 듣는 사람 기분이 좋아질 멋진 칭찬을 건네 보자. 혹시 모른다, 당신의 말 한마디가 브런치 안 하는 수많은 도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따스한 위로가 될지도. (단, 유부남/유부녀한테는 금지. 남의 가정 절대 지켜.)  


참고로 도비는 어제 탕비실에서 스쳐 지나간 동료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길래 뒤로 쳐다보지도 않고 ”오오, 향기 좋다!“고 했고, 표정은 못 봤지만 ”구린 냄새 날까 봐 좀 뿌렸어요!“ 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아주 밝았으니 아마 그분은 마시려던 커피가 달달한 아이스 바닐라 라떼도 아닌데 기분이 한결 좋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이웃나라 왕자님이 반하기는 개뿔. 현실은 우리집 왕자 수발 드는 무수리.



https://brunch.co.kr/@freeing-dobby/37

아빠한테 나 너무 슬프다고 했을 때, 나는 지금의 이런 나로 돌아오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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