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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Aug 13. 2023

30대 싱글맘의 간헐적 빈 둥지 증후군

정신없음의 순기능을 이렇게 몸소 체험

<나의 발칙한 이혼 일지>를 쓸 때 어느 독자님이 이런 내용의 댓글을 남겨 주셨다. 그래도 나중에 돌아보면 아이들이 있어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격주로 아이들을 "아빠집"에 보낸 지도 이제 반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한두 달은 아이들이 없는 동안 내가 어떤 일을 겪을지 모른 채 흘러갔다. 밀린 빨래로 시작해 반찬 준비로 끝나는 집안일을 하며 주말을 보내는 게 정신 건강에 썩 좋지 않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던, 힘들지만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신혼 때 애들 아빠가 왜 친구들을 만나지 않냐고 의아해할 정도로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겉보기에는 맨날 친구 만나서 놀 듯한 이미지여서 내가 결혼하고 몇 달이 지나도록 아무 저녁 약속이 없는 게 신기했을 법도 하다. 토요일에는 교회 편집부 모임, 일요일에는 교회 가는 것이 내 주말 외출의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아이들을 아빠집에 보낸 후 혼자 넷플릭스나 밀리의 서재를 틀어놓고 온종일 있다 보니 너무 무기력해졌다. 친구가 일하는 카페에도 가다가 괜히 청승 떨지 말자며 병원에 가서 다시 약을 처방받아 먹었고, 애들 없을 때면 언니네 집에 가서 지내는 주말이 몇 번 이어졌다. 헬스장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던 날도 이쯤이었다.


물론 도서관에 가서 관심 가는 책도 보고,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차분하게 어른의 식사를 하며 건설적인 시간도 가졌다. "화려한 돌싱 라이프" 따위 꿈꾼 적도 없지만 졸업 직후 일찍 결혼한 내가 낮에 잘 충전했다고 생각한 에너지는 밑 빠진 독에 부은 물이기라도 했는지 밤에 빈 집에 들어가는 순간 손 안의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동생이 자꾸 가자고 해서 교회에도 가 봤는데 평생을 교회 여자로 살아온 내 좋았던 젊은 날이 생각나서, 그리고 아무 말에도 공감이 되지 않고, 교회의 어디에도 이혼한 (구)사모님을 위한 자리는 없는 것 같아서 나는 당분간은 교회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반년을 격주마다 이렇게 지내고 보니 자녀 독립, 폐경/완경, 퇴직 혹은 남편의 은퇴를 겪으며 50대 여성들이 느낀다는 "빈 둥지 증후군"과 싱글맘인 내 슬픔이 닮은 것 같았다. 자녀가 독립하려면 최소 십오 년은 더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간헐적 빈 둥지 증후군을 연습할 수 있으니 그나마 조금 다행일까.


아이들이 있어 이 시기를 버틸 수 있을 거라는 말은 어쩌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른다. (그래도 없는 게 몸은 확실히 더 편하다.) 분명한 건 일 년 전 살고 싶지 않은 마음과 싸워야 했던 나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 그러니 나는 일 년 후 나 자신이 지금과는 달리 빈 둥지를 더 잘 즐기는 내가 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나랑 MBTI가 같은 미혼 남자 사람 친구. 나를 닮아 배려심이 많다. 오래된 친구 넘나 소중.




(이미지 출처=https://www.raq.org.au/blog/dealing-empty-nest-syndrome 여기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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