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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Aug 15.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마음

언제부터 이런 마음이었을까 생각해 보기

처음부터 브런치에 김도비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진 않았습니다. 작가 신청을 할 때부터 지금 쓰는 종류의 글을 쓰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로켓배송처럼 합격 메일을 받을 때도 브런치가 어떤 곳이고 어떤 주제가 유행하는지 전혀 몰랐구요. 나도 이제 내 이혼이 피곤하다고 생각할 무렵 우연히 네이버에서 브런치는 특정 글들이 너무 많다는 글을 보며 아,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숙연해진 건 말할 것도 없네요.


사실은 그전에도 조금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작가님 글을 잘 읽고 댓글을 달려다가 '이혼 글이 넘쳐나는 브런치에서 이런 글이야말로 잘 되면 좋겠다'는 댓글을 본 후 잘못한 것 없이 슬퍼지는 익숙한 경험을 했었거든요. 최근 브런치 정책 바뀐 걸 보고도 '너무 길어서 읽기가 좀 귀찮군.'이라며 넘겼더니 어느 순간 저에게 형광펜스러운 표시가 붙어 있었어요.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였나. 어느 날 이혼녀가 되었을 뿐인데. (제 자신이요.)


그런데 가족이나 결혼, 글쓰기가 제 초미의 관심사라는 건 제가 어린 20대일 때부터 친하게 지낸 분들은 너무도, 너무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정말 소중하게 여겼어요. 그래서 울음을 삼키며, 울음을 쏟아내며 쓴 글을 모아 <나의 발칙한 이혼 일지>라는 제목을 붙인 뒤 글을 이어나가기 시작했을 때는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소중한 원고를 안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이었답니다.


해일처럼 몰려오던 슬픔은 많이 가라앉았고, 체감상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구독자 증가 추이도 점차 잦아들었어요. 그리고 저는 독자님들이 저를 아시기 전의 저로, 시시콜콜하고 시답잖은 '사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 돌아오는 중입니다. 자연히 이런 생각을 했어요. 공주가 돌을 넘겼을 무렵 지인에게 브런치 해 보지 않으련 하는 말을 들었었는데, 내가 그때 브런치를 시작했더라도 지금의 구독자 수에 이를 수 있었을까 하는.


영어에 sadfishing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이 동정 유발 목적으로 슬픈 사진이나 글귀를 포스팅하는 걸 뜻해요. 우리말로 하면 나의 슬픔이나 우울을 미끼로 클릭과 댓글, 공감을 유도하는 관종인 셈입니다. 저는 슬픈 사정을 밝히고서 친구들에게 이것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행여나 내 솔직한 표현이 불필요한 관심을 요구하는 걸로 보이진 않을까, 주의하려고 이밍아웃 이후 줄곧 조심하고 있어요.


그건 브런치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제 카카오톡 친구 수보다 10배는 더 많은 구독자 님들이 여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구독을 하실 때는 읽고 싶은 게 있으셔서 구독하셨을 텐데 저는 조금씩 나아지며 새로운 삶의 궤도에 들어섰기 때문에 이제는 이혼 후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을 쓸 것 같아요. 나이 들고 아이들 자란 후에 같이 읽으며 새록새록 추억에 젖어도 괜찮겠다 싶은 그런 이야기요.


대단할 것 전혀 없지만 혹시 저와 비슷한 슬픔이 있거나, 있을 예정이거나, 아님 저희 아이들과 닮은 분들이 읽으시고 마음을 비춰 보실 수 있다면 그것도 참 좋은 일일 것 같아요. 그런 글을 남겨 주시는 분들 통해 저는 묘하게도 큰 위로를 받는답니다. 어쩌다 질질 짜는 소리를 쓴 날이면 그냥 아, 저 여자가 오늘은 그런 날이구나,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지, 하고 넘어가 주세요. 어떤 독자님처럼 혼술하며 허공에다 짠을 해 주셔도 좋고요 :)


그래서, 그 지지부진하던 이혼 이야기도 다 썼는데 저는 왜 자꾸 고만고만한 이야기를 또 쓰는 걸까요. 살 빼고 싶어도 맘대로 안 되는 먹는 마음처럼 제 쓰는 마음도 그러합니다. 문장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계속 생각에 남아요. 부유하는 문장을 짬 내어 하얀 화면에다 까만 활자로 배열하고 나면 집은 좀 드러워도 머리는 개운해집니다. 이상한 주접을 떨어 놓고는 얼른 쓰고 싶어 궁뎅이가 들썩들썩할 때도 있고요.


글 관련 훈련을 받고서 쓰기를 더 좋아하게 된 것도 같아요. 제 수행 능력이 제법 나쁘지 않았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배운 걸 적용할 에너지는 없지만, 그래도 문장이 잘 읽힌다는 얘기를 몇몇 독자님들이 남겨 주셨고 친구들한테는 글에서 제 목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어요. 아마도 문체, 글투가 있기 전에 말투가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언젠가 뭔가를 "계획하고 구성해서 쓸" 에너지가 생기면 그런 내용도 써 보고 싶네요.


최근 아이들과 동화 작업을 시작했어요. 공주는 잔뜩 신이 났는지 자꾸만 저 일하고 운동하는데 전화를 걸어 귀에서 피가 나도록 떠듭니다. 저만 귀에서 피가 나려니 제가 정말 억울해서ㅋㅋㅋㅋㅋㅋ 나중에 독자님들과 함께 귀에서 피를 흘릴 그날이 오기를 바라 봅니다. 저는 오늘 아빠 없이 글램핑 가는 줄 몰랐다고 왕자놈이 대성통곡해서 너무 짜증이 났지만 주말에 다 같이 워터파크 가는 걸로 잘 달래고 쇼부를 봤어요. 부디 행운을 빌어 주세요 :)


빼려고 해고 쉽사리 뺄 수 없는 그런 먹는 마음을 담아, 마쉬멜로우 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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