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봤을 난닝구가 이렇게 낯설다
아빠집에 다녀온 아이들 짐을 일주일 동안 안 치우고 있었다. 그러다 할머니 생신 축하를 겸하여 (구)남편이 애들 데리러 온다기에 부지런히 대청소를 했다. (역시 집이 더러울 땐 손님맞이가 최고.)
급한 대로 거실만 청소해서 애들 아빠를 잠시 맞은 뒤 아이들을 배웅하고는 사흘 째 건조기에 들어 있는 빨래를 죄 꺼내어 영화를 틀어 놓고 개켰다. 만만한 것부터 뒤적이며 하나씩 정리하다 아이들 옷이라기에는 너무 크고 내 옷도 아닌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믿기 힘들게도 그건 (구)남편의 난닝구였다. 이게 무슨 일.
나는 헤어짐을 겪어 본 일이 잘 없었다. 외국 생활을 할 경험이 좀 있었고, 그래서 친해진 사람들과의 이별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과 헤어진 경험은 애들 아빠와의 이혼이 처음이다. 아마도 애들 아빠가 내 유일한 남자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유일한 (구)남편이리라.
이혼 후 2인용 뉴브리카 모카포트도 그래서 샀다. 4인용 뉴브리카 모카포트로 커피를 만들면 커피가 자꾸 남아서, 아침에 먹고 남겨 두면 밤에는 사라져 있곤 하던 커피가 자꾸만 이튿날이 되도록 남아 있길래. 다 같이 먹으면 딱인 4인용 뉴브리카는 이후 엄마 집에 갖다 놨다. (이혼한 딸을 떠올릴 애물단지가 되었으려나.)
연애를 많이 한 사람들이라면 그나마 대처가 영 낯설진 않을 텐데 나는 하필이면 첫 이별이 이혼이라 조금 힘겹게 적응기를 보냈고, 지금도 계속 그를 마주하며 노력 중이다. 긴 세월 끊임없이 연애와 이별을 반복한 친구에게 너는 어려운 마음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물었을 때 돌아온 “시간이 답”이라는 말을 믿는 수밖에.
아빠집에서 애들 빨래에 섞여 들어온 듯한 그의 난닝구. 어머님 생일 파티 후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난닝구를 돌려주려고 했는데 그가 먼저 내민 내 책과 졸업증명서가 뜬금없어 순간 난닝구를 까맣게 잊고 말았다. 아무래도 워터파크 갈 때 줘야겠다. 새것이 아니라도 난닝구는 소중하니까.
이게 어쩌다 이렇게 되었냐면요…
https://brunch.co.kr/brunchbook/divorce-story
한부모 육아는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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