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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Jul 31. 2023

내가 애들 선생님을 존중하는 법

마음이 통할 때가 있다

우리 애들 또래 남매를 둔 교사 절친에게서 안부 카톡이 왔는데 프로필 사진이 검은 리본이었다. 생각난 김에 교사 친구들 프사를 보니 하나같이 검은 리본. 리본 색깔처럼 마음이 먹먹해졌다.


내 친구들의 이야기이자 내 친구 부모님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최근의 슬픈 사건. 작년에 근처 초등학교에서 학기 중 담임 선생님이 교체되었다는 얘기를 듣고도 많이 놀랐었는데 역시나 세상엔 놀랄 일들이 생각보다 흔하다.




싱글맘이 되면서 아이들 보살피기가 때때로 귀찮고 돌봄에 나태할 때도 있지만, 나는 아이들 더 어릴 때 겉보기로는 괜찮은 엄마였는지 공주랑 왕자 외톨이 육아하는 걸 바로 옆에서 보고도 애를 더 낳은 집들이 있고, 육아 인스타랑 유튜브 해 보라는 말도 들을 만큼 아이들에게 애정을 쏟으며 잘해줬다.


그런데 애들 선생님들께는 한 해 마무리할 때 말고는 아무것도 안 했다. 인간관계에서는 외향적인 면이 조금 더 많은데도 말이다. 아이들을 아침마다 교실 앞, 건물 앞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며 매일 담임 선생님을 만나던 외국에서도 나는 그저 웃으며 인사했다.


외국어를 못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선생님들이 맡는 학생은 우리 애 말고도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들도 보육/교육 전문가인 동시에 고단한 직장인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우리집 꼬마들은 대단히 까다로운 아이들이 아니고 그동안 괜찮은 선생님들을 만났기 때문에 나는 연초에 있는 상담날 레퍼토리를 수 년째 고수 중이다. (대략 일 년치 수다력을 그날 하루에 대방출한다.)


“전문가인 당신을 믿는다. 내 아이 나이대 아이들에 대해 언제나 초보 엄마인 나보다 당신이 경험도 더 많고 더 잘 안다.“


“아이가 친구와 관계 맺는 방식이나 또래 사이에서의 행동도 나보다는 당신이 더 잘 볼 수 있다. 그러니 지속적으로 특정 아이와 갈등을 빚는다면 나에게 알려 주면 좋겠고, 나머지 일에 대해서는 당신에게 맡긴다. 아이가 조금 다쳐왔다고 연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K-마미라서 노파심에 말을 보탠다.


“내가 아이에게 관심 없는 게 아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완벽한 엄마는 아니고, 아이는 내가 돌볼 때도 종종 다치고 싸움이 난다. 그러니 언제나 최소로 필요한 것보다 더 잘 돌봐 주시리라 믿는다. 아이 맡아 주셔서 감사하다.”


상담 레퍼토리 끝맺는 전용 주접도 절대 잊지 않는다.


“나도 출근보다 퇴근이 더 좋다.”


이렇게 말이 많을 바에는 차라리 우리 애 어떠냐 시시콜콜 질문하는 게 나았으려나. 아무튼 아직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안 찍혔다.


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신규 선생님에게도, 정년 퇴임이 몇 개월 안 남은 선생님에게도 늘 선생님을 믿는다고 말했다. 내가 선생님을 믿고 존중하면 선생님도 내 아이를 존중하기가 더 쉬울 듯도 했다.


매번 진심인 내 말에 선생님들은 매번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다, 믿어 줘서 고맙다고 화답했다. 하기야 당신을 믿는다는 사람에게 무슨 험한 말이 돌아올 리도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당시 선생님들의 대답이 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진심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진심을 전하려 한다.


꼭 필요할 땐 선생님 근무 시간에만, 그리고 메일이나 전용 메신저로 연락하는 기본적인 에티켓도 지키려고 한다. (그렇지만 따로 연락은 거의 안 한다.)


제일 좋은 시누이는 없는 시누이,

제일 좋은 학부모는 연락 없는 학부모.


근데 나는 정말 운이 좋다. 우리 아이들은 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 선생님이 바뀌는 게 너무 슬프다고 울먹였는데, 이 말을 전하면 선생님들도 갬동에 젖어 반쯤 그렁그렁 한다. 그러면 나도 ‘이 좋은 선생님과 헤어지다니.’ 하고 아쉬워진다.




여담


암으로 휴직 중인 친구가 방학하자마자 자기 아들 딸에게 이게 뭐냐고 방학 별로라고 핀잔을 들었단다. 내가 말했다.  

애 둘 있는 다른 초등 교사 친구가 다행히 아직 잘 지낸다고 했다.


엄마 아빠도 파이팅, 선생님도 모두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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