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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Aug 10. 2023

먹고 싶은 메뉴는 "아빠"

가고 싶은 식당도 아빠

여름이라서는 아닌데 요태기가 세게 왔다. 엄마네 집에 다녀온 후 밥솥이 일을 안 한 지 며칠 째. 밥은 하기 싫은데 입맛도 없지는 않아서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까 짱구를 굴리다가 옆에서 책 읽는 왕자에게 물었다. 우리 뭐 먹을까?


아빠.


자주 겪었다고 해서 당황하지도 않는 건 아니다. 책에 눈을 꽂은 채 아빠라고 말한 왕자는 읽던 걸 마저 보느라 뜸을 들이더니 코를 긁으며 말을 이었다.


"나 아빠랑 같이 먹고 싶어."


먹고 싶은 메뉴를 물었는데 왕자가 생뚱맞게 아빠를 찾았다. 저번에 아빠랑 같이 밥 먹었지 않냐고, 지금, 지금 우리 어디 가서 먹을지를 물었더니 왕자가 다시 말했다.


"아빠랑 같이 먹을 수 있는 곳에 가자 우리. 엄마랑 아빠랑 다 같이 먹은 지 너무 오래됐잖아!!"


떨 수 있는 주접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아무 주접도 생각나지 않아 다음에 방학 끝나기 전에 같이 먹자고, 아빠한테 말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애들 아빠에게 말을 못 했다.




아이들을 키우고, 외국생활을 하고, 학바라지를 하는 내내 나는 일주일에 한 번쯤이라도 마음 편히 남편과 밥을 같이 먹고 싶었다. 이제는 영영 요원해진 시간들. 지나간 세월이 무상할 때면 자기 일에 매몰되어 살던, 잊고 싶은 그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을 어지럽힌다.


왕자가 말로, 그림으로, 표정으로 그리움을 표현할 줄 짐작 못 했던 건 아니다. 왕자의 이런 마음을 그 사람은 알까 싶어 아이가 아빠를 이만큼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하려다가도 그것이 애들 아빠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봐 또 말을 삼킨다.


그래도 아이들의 행복은 소중하기에, 그리고 함께 밥을 먹자고 청하는 건 나의 몫이기에 마음이 좀 가라앉을 때까지 시간을 보내다 연락하려 한다. 같이 밥을 먹는 일이 이렇게 특별해질 수 있다.




<도비와 함께 노래를>


Ólafur Arnalds의 Happiness Does Not Wait.

원래는 2013년에 발매된 곡이고, 이건 2021년 버전이다.

부디 함께할 수 있을 때 함께하시길. 행복은 한자리에 머무르지도, 우리를 기다려 주지도 않으니.


(이미지 출처=Freepik. 도비네 꼬마들은 더 귀엽게 생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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