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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Aug 18. 2023

싱글맘의 아들이 개꿈을 꾼다면

들어주는 것이 인지상정

일전에 왕자를 데리러 갔던 날 우연히 마주친 왕자네 담임선생님이 왕자가 참 의젓하다고, 방학 때 엄마네 할머니 집에 다녀온 거랑 아빠집, 아빠네 할머니 집에 가서 놀고 온 걸 즐겁게 얘기하더라고 했다. 어린이집에서는 슬픈 기색이 없이 아주 잘 지낸다고.


“선생님이 잘 챙겨 주셔서 잘 그런가 봐요. 저한테는 아빠랑 같이 살고 싶다고, 아빠 보고 싶다고 종종 그러거든요.”


저번에도 아빠 만나려면 아직 몇 시간 남았는데 "아빠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나는 아빠 오는 시간만 기다리느라 너무 힘들어.” 하며 왕자 혼자 엄청 애닳았다. 다행히도 나는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슬프긴 했지만, 아이의 그런 마음은 좋은 마음이니까. 나는 빈 집 증후군 예방 접종을 하는 셈이니까.


왕자가 어린이집에서 그린 여름휴가 그림을 본 건 선생님과 그런 대화를 나눈 지 일주일도 안 되었을 때였다.


“엄마 아빠랑 바다에서 물고기 봤어요."


??? 우리가? 우리가 그랬다고?

전에 같이 바다에 가기는 했었지만 물고기를 봤다니, 꿈이라도 꾼 걸까.


왕자는 지금 같이 바다에 가서 물고기를 보고 싶어 그랬을까, 아니면 저게 지금 휴가철에 '어울리는' 그림이라고 어린이집에서 학습한 걸까. 온 가족이 함께하는 연중행사가 생각보다 많음을 이혼하고 나서 깨달았다. ‘5월에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었다면 7, 8월에는 휴가철이 있었구나.’


그렇잖아도 개학 전에 우리 네 식구 여행을 한 번은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소극적이고 싶은 나의 추진력에 부스터를 달아 준 건 왕자의 불쌍한 그림이 아니라 지인의 숙박권 증정이었지만. 덕분에 안 가기도 아깝고 거짓말하기도 뭣하여 결국 넷이서 자고 오는 여행을 떠난다. 물고기는 못 보아도 물놀이는 같이 하는 걸로.


정상가족이든 아니든 인생은 늘 뜻밖의 사건으로 가득한 법. 그 사람이나 나나 아이들과 함께일 때 행복하려는 생각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 어차피 아이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건 짧아도 강렬한 행복의 순간일 테니 그저 오늘 하루 과업을 충실히 수행하며 살아야겠다. 추석과 크리스마스가 급한 숙제가 아니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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