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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김도비 Aug 24. 2023

아이를 낳았고, 열쇠가 생겼다

누가 나에게 열쇠를 주었을까

열쇠를 쥔 건 아이들이 아니라 언니예요.

친구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아, 아이들한테는 열쇠가 없어.

내가 아이들에게 잘 못해서 미안하다고, 생리 직전에는 너무 열받고 짜증이 나서 이렇게 엄마 말 안 들을 거면 아빠한테 가서 살으라고 했다고, 그런 말도 뱉는 엄마랑 살아야 하는 아이들은 누가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상담일을 하는 친구에게 물었다.

언제나 나에게 잘 버티고 있다고 말해 주는 친구였다. 힘든 시간을 잘 보내왔다고, 잘하고 있다고, 모든 에너지가 고갈된 상황에서 오래 고민했고 아이들을 책임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러니 지금은 언니 자신부터 추스르라고 말해 주는.

자괴감의 수렁 아래로 하염없이 가라앉을 때는 그런 말이 나를 살리기도 했다. 그런데 교통사고처럼 아무것도 선택한 것 없이 이 일을 겪는, 이런 엄마를 겪는 내 아이들의 마음은 어떻게 헤아려 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 마음을 전하자 친구는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했다.

너무나 뻔한 사실을 깨닫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결국 열쇠를 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라서, 우리가 더 잘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달라지는 것뿐이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런 엄마와 사는 아이들을 어떻게 위로할까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

"나? 나는 미안하다고 해. 어린이집 데려다주면서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같이 어디 갔다 오면서 미안했다고 말해. 안아 주고. 애들도 나 안아 주고. 애들은 '괜찮아요 엄마, 죄송했어요', 그래."

늘 엄마를 용서해 주는 속 없는 어린것들.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부모를 고르지도, 이혼을 고르지도 않은 아무 선택권이 없었던 아이들. 자기가 잘못해 놓고 나중에 와서 미안하다고 말하던 우리 아빠가 생각났다. 미웁고 원망스러웠던 것도, 다행히 그런 마음은 잠시 머물다 이내 떠난 것도.

육아할 때 제일 쓸데없는 게 죄책감이라는 말을 붙들고 싶은 하루가 있다. 애들 아빠를 고른 것도 나의 책임, 아이들을 낳은 것도 나의 책임, 외면할 수 없는 책임감이 유난히 무거운 날. 무게 치는 것처럼 연습해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다. 힘든 건 이제 그만하고 살고 싶지만 애 딸린 아줌마는 힘든 것도 해낼 줄 알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