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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Sep 06. 2023

엄마 아니냐고 묻지 마세요

무슨 대답이 듣고 싶기는 했던 걸까

39도를 넘기지는 않았지만 밤새 열이 안 떨어지길래 왕자가 눈 뜨자마자 옷 갈아입혀 병원으로 갔다. 대기가 몇 명 없어 조금 기다린 후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그 선생님이 있었다. 아이는 좀 어떠냐기에 열이 38도 되어서 해열제를 먹여 재웠다고 했다.


목구멍을 확인하면서 선생님은 아이가 배가 아프다거나 설사를 하지는 않았냐고 물으셨다. 잘 모르겠다고, 아이한테 물어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다. 자고 일어난 아이가 목이 아프고 어지럽다며 시원한 옥수수수염차를 마셔야겠다고는 했었지만 배가 아프다고는 말한 적이 없었다. 배변 뒤처리도 혼자 하는지라 아이가 어떤 종류의 변을 보았는지도 나는 알 수 없었다. 잘못된 정보를 전할 수는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대답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의사는 어이가 없다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엄마 아니에요?

아, 새엄마예요, 하고 대답해서 머쓱하게 할 걸 그랬나.

옆집 아줌마예요, 그랬으면 차라리 웃기라도 했으려나.

난데없는 힐난에 아, 제가 엄마가 맞는데요, 배 아프다는 말은 못 들어서요, 해명을 하면서도 머리로는 아침부터 왜 저러냐며 눈을 찌푸렸다. 의사 선생 너의 엄마는 너의 마음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아주는 대단한 사람이기라도 했던 걸까.


들어오며 만사가 귀찮다는 그 눈을 마주했어도 선생님도 출근하기 너무 싫었나 보다, 어차피 1분이면 끝나니까 처방만 받으면 되지 싶어 개의치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열도 별로 안 높고 목도 많이 안 부었다는 말에 내가 귀나 다른 데는 괜찮냐고 물은 것이 그 의사는 그렇게 싫었나 보다.


"방금 안 보셨어요? 괜찮잖아요."


아침부터 핸드폰을 변기에 빠트린 걸까, 아니면 지갑이라도 잃어버린 걸까, 아니면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걸까. 귀 안쪽이 좀 빨갛길래 물었는데, 척 본다고 딱 알 것 같으면 내가 의사를 했을 텐데.


일 년에 한두 번 병원에 올까 말까 하는 건강한 아이들을 둔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랄까. 본 것 중 가장 호전적인 의사였고, 여러 의미로 다시는 안 보고 싶은 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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