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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Sep 25. 2023

우울한데 왜 자기 머리를 자를까?

4. 우리의 슬픔은 따로 태어난 쌍둥이였다.

친구가 어느 날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집에서 혼자 머리를 잘랐다며 찍은 셀카였다.


왜 그랬냐고 묻지 않았다. 정신 나갔냐는 쉬운 말도, 보기 좋다는 헛된 말도 하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데? 제법 괜찮은 듯. 그렇게 답장했다. 집에서 갑자기 혼자 머리를 자른 마음, 그 마음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2019년 12월 31일. 밤에 교회 가야 해서 머리를 감았는데 치렁치렁 내려온 머리카락이 갑자기 너무 성가셨다. 긴 머리가 지저분했고, 보기가 싫었고, 그래서 곧바로 유튜브에 들어가 ‘How to cut your own hair’을 검색해서 대충 따라 잘랐다.


길어버린 손톱이라도 깎듯 가위를 싹둑이며 머리카락을 자르던 마음. 무엇을 내다 버리고 싶기라도 했는지 조금의 미련도 주저함도 없이 머리카락을 잘라냈던 그 마음. 나처럼 암 수술을 하고 치료도 받는 친구에게서 오래 잊고 지냈던 그 마음을 똑같이 발견하고 나니 안타까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실없는 소리가 하고 싶었다.


"나는 그래도 외국이었는데. 모질이 다르다는 이유로 현지 미용실에 가 본 적이 없었거든. 나는 외국살이 핑계라도 있었지, 너는 조금만 나가도 전문가의 손길로 커트를 할 텐데, 얼마 하지도 않는데 뭐 하러 그랬어~ㅎㅎ 나쁘진 않은데 그래도 마음 괜찮아지면 미용실 가서 살짝만 다듬어."


친구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내 생일을 축하해 주러 KTX를 타고 온 친구는 전문가의 손을 빌려 머리를 잘 자르고 곱게 펌도 해서 나타났다. "머리 잘 됐네, 잘 어울린다” 하는 말 한마디는 누가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 아주 아주 특별해질 수도 있다.




내 생일 축하 차 여름에 만났던 친구는 친구의 생일도 직접 만나서 축하하고 싶다는 나의 제안에 또 용산역으로 오겠노라 했었다. 가을이 되어 날짜를 잡아 보자고 전화를 했더니 그렇잖아도 요즘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는데 아주 납득이 되고 통쾌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 이 시간에 총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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