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미혼입니다. 은행에서 확인했어요.)
그간 내 이밍아웃 행태란 대체로 이렇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 한 번 보고 말 사람들, 아니면 우리 애들과 접점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끔이지만 이혼 사실을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때를 봐서 먼저 고백한 경우였다.
그런데 낯선 동네로 이사해 살면서 가끔 밥이나 커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단순한 바람이 생겨 친구가 소개한 경로를 통해 어떤 커피 모임에 나갔다가 사건이 터졌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간단히 인사하고 얘기를 나누는데 어떤 분의 남자친구가 내게 물었다.
“혼자 사세요?“
네, 하고 대답하며 속으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나는 혼자 살지 않는데 내가 왜 혼자 산다고 말했지?
혼란한 순간을 잠시 보낸 후 주말에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 갈 계획이라고 했더니 사람들이 누구랑 가는지 궁금해했고,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하자 아까 혼자 사냐고 물었던 분이 또 질문했다.
“이러고서 남자친구랑 가는 거 아니야?”
없다고 답하니 이번에는 이렇게 물었다.
“남편이랑 가는 거 아니야?“
조금 당황해서 “그게 뭐죠?”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되물었다. 그런데 반쯤은 진심이었던 내 대답에 돌아온 그다음 질문에는 차마 웃음이 나지 않았다.
애랑 가는 거 아니야?
머리가 하얘졌다. 그리고 이게 다 무슨 얘기냐며 대충 얼버무리는 즉시 나는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는 척 다른 사람들을 속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애엄마가 대체 어떻게 다른 것도 아니고 애들을 숨길 수 있을까.
끌고 간 차 뒷좌석에는 카시트가 두 개 있고, 입고 간 외투 주머니에는 왕자가 접어준 전투비행기가 들어 있으며 휴대폰 첫 화면에는 아이알리미와 애들 알림장 앱이 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내 삶은 온통 애엄마 아닌가.
불현듯 이혼한 사람은 오면 안 되는 건가 싶어 모임 소개를 다시 봤는데 “기혼 (가입) 불가”라고 되어 있었다. 궁금증이 일었다.
유부녀는 확실히 아니지만 결혼 경험에다 아이도 있어 애매했고, 친구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친구는 내 기/미혼 여부를 떠나 내 마음 불편해지는 것을 염려했다.
그랬다. 내가 기혼인지 미혼인지보다는 이런 일로 스스로 한심해지고 자괴감이 드는 게 더 싫었다. 무엇보다도 내 성격상 삶의 가장 큰 부분을 감춘 후 사람들과 떳떳하게 어울릴 수 없었다.
생각이 정리되자 마음이 편해졌고, 나는 다음날 조용히 모임에서 탈퇴했다. 그리고 잠시 뒤, 옆자리 앉았던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미지 출처=Freep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