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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Oct 27. 2023

내 아들이 여자 번호를 따왔다

7시에 통화하기로 했다며. 

잠시 밖에 다녀오는 동안 아이들이 먼저 태권도에서 돌아왔다. 그러고선 저녁을 먹는데 왕자가 이따 일곱 시에 한결이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 한단다. 생일 파티 얘기를 해야 한다나 뭐라나.


???


한결이 생일이냐고 하니 내년 봄에 있을 본인 생일 파티 얘기를 한결이랑 하기로 했는데 일곱 시에 통화하기로 했단다. 알고 보니 어린이집에서 한결이 엄마 전화번호를 한결이한테 받아왔고, 이미 누나 폰으로 1차 통화를 마친 상황. 그 집 엄마가 얼마나 당황했을까 생각하니 살짝 아찔해졌다.


그리고선 저녁 먹은 거 치우고 잠시 누워 쉬는데 갑자기 왕자가 다가와 전화 걸기로 하지 않았냐고 울먹였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일곱 시를 20분이나 넘긴 것. 일면식도 없지만 아들이 따온 한결이 엄마 전화번호로 서둘러 전화를 걸어 아들에게 넘겼다.


"응~ 한결아~ 저녁 먹었어?"


누나랑 싸울 때의 흉폭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엄마를 쏙 빼닮은 사회적인 얼굴과 목소리로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우리 왕자. 전화기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나는 피자를 먹었는데 너는 저녁을 뭘 먹었는지, 내일은 뭐 하는지, 알콩달콩 묻고 답하는 목소리가 이렇게나 귀여울 일인가! 저러다간 밤이 새도록 통화가 이어지겠다 싶어 왕자에게 다가가 전화를 바꿔 달라고 했다.


"응, 한결아, 나 왕자 엄마야, 고기 맛있게 잘 먹었어? 있잖아, 엄마 잠깐만 바꿔 줄 수 있어?"


아들이 번호를 따온 그 엄마와 그렇게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알고 보니 한결이도 오늘 왕자에게서 내 전화번호를 받아왔다며 자기도 그게 재밌었단다.


"아니, 한결이가 누구 번호를 적어와서 통화한 게 처음이라서요~ 옆에서 얘기하는 거 듣는데 너무 귀여운 거예요~"


나도 우리 왕자가 친구랑 그렇게 다정하게 통화하는 걸 처음 들어 봤다고, 나중에 여자친구가 생기면 저렇게 하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어느 주말에 애들이랑 같이 카페에 가서 놀면 어떨지 제안했다. 한결이 엄마가 좋다고 했다. 김장이 언제가 될지 몰라 일정 확인이 필요하다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온 지 2년, 이혼한 지는 채 1년이 안 됐는데 아들 친구 엄마를 이제야 처음으로 사귀려 한다. 귀엽고 사교적이고 "아빠집"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아들 덕분에 나는 또 곧 이밍아웃을 하게 되겠지. 한결 엄마, 이혼해서 김장도 안 하는 저란 엄마... 괘... 괜찮으실까요? 벌써 조금 떨린다. 


글씨도 귀엽다


(이미지 출처=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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