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비 Jan 24. 2024

추운데 애들 데리고 고생이라니요

저는 괜찮아지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전세 대출 알아보러 왔는데요,

채 앉기도 전에 어떻게 오셨냐고 묻는 직원에게 대답하며 혹시 이율 우대 받을 수 있는지도 여쭤 보고 싶다고 했다. 신분증을 달라더니 직원이 나를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신혼부부세요?"


그랬으면 좋았을 뻔했지만.......


"아, 제가 결혼은 아니고, 아이들이 있어요. 이혼했어요."


머쓱하게 대답한 후 상담을 진행했고, 이런저런 항목에 체크한 뒤 필요한 서류 목록을 받았다. 얼마나 대출이 되려나 묻고, 이렇게만 준비하면 도르마무를 하지 않을 수 있는지도 물었다. (도르마무 소리에 이 악물고 웃음을 참느라 버퍼링이 걸린 젊은 직원을 보며 도르마무가 그렇게나 웃긴 말인가도 생각했다.)


대출 상담을 받으러 가면 마음이 쫄릴 수 있다는 언니의 사전 공지가 있은 덕분인지 조금 낯설기만 했을 뿐, 불편한 것 없이 상담을 잘 마쳤다. 미혼이며 유자녀라는, 나의 새로운 이름도 발견했다. 확답은 못 받았지만 어느 정도 대출각을 확인하고서 본격 집 보러 다니기도 시작했다.  


그러다 만난 어느 부동산 아주머니는 남의 일에 관심이 많고 호구 조사를 좋아했다.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는 동안 아주머니는 내가 식구가 셋인데 애가 둘이라는 사실을 듣고서 내 상황을 알아차린 듯했다. 어색한 정적이 흐르려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공기가 바뀌면서 이 달갑지 않은 대화 주제도 바뀌길 바라던 그때.


"아유, 추운데 애들 데리고 이사하느라 무슨 고생이야~?"


나쁜 의도가 없는 줄은 알지만 한숨처럼 튀어나온 아주머니 말에 잠자코 동의하기 싫었고, 순식간에 나는 웃으며 입을 뗀 뒤 어쩌면 부동산 아주머니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건네고 싶은, 주문 같은 말을 했다.


고생 아닌데.


포장은 이사 아저씨들이 다 해 주고, 저는 이참에 집 정리 한 번 싹 하고 좋은데."


옛날 아낙네들 고생에 비하면 나는 꿀을 빠는 중일 테지.


큰 애 손 잡고, 작은 애는 등에 업고 봇짐 지고 이사하는 거였으면 언젠가처럼 길 가다 주저앉아 울었을 거다. 대출 상담도, 집 알아보러 다니는 것도 매일 하고 싶을 만큼 기다려지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잠깐 이렇게 지나가면 더 낫게 살 수 있는 거라서, 그래서 하는 거 아닌가. 혼자서는 다 처음 해 보는 일인데, 내가 대차게 잘 살아 보려는데 아주머니의 아무 말 때문에 기껏 다잡은 놓은 마음이 허물어지면 곤란하다.


사실 상담 받고 집 보러 다니며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자주 할 일 없는 좋은 경험이라고도 생각했다. 다른 부동산 아주머니 한 분은 집을 보고 내려오며 얘기를 나누다가 "애기 엄마가 사람이 순수하고 어쩌고 저쩌고" 라면서 내가 이런 일에 있어 경험이 별로 없고 야무지지 않은 걸 돌려 까고 우위를 점하려 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러니 나는 하나씩 헤쳐나가면서 이제라도 똑쟁이가 되면, 스트레스 대처에도 더 능숙해지면 되는 거다.


나는 일단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살기로 했다. 나한테 필요한 시간이고, 이 시간을 잘 보내면 나는 더 괜찮아질 수 있으니까. (엄마 위경련 때문에 죽 먹고 테레비를 많이 본 아이들은 좋았겠다. 모쪼록 이사가 아이들에게는 설레고 즐거운 일로만 남길.)




대문 흑백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포대기 그림 출처: 한재휘, & 이은진. (2020, February 23). 한국 전통 포대기의 유형과 변천.


작가의 이전글 애들이 아빠집에 갈 때 싱글맘은 무얼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