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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Jan 24. 2024

추운데 애들 데리고 고생이라니요

저는 괜찮아지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약점은 트집을 잡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의 약점은 감싸고 보살핀다. 사람 마음이 그렇고, 오빠도 그랬다. 아이들을 혼자 키운다고 하니 그것마저 좋게 본 것 같았다. 잘하고 있다고,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나를 응원했다. 아빠처럼 챙겨 주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았다.


그러다 가끔은 모성애가 고픈 사람 같기도 했다. 나는 남편 학바라지와 외톨이 육아로 오래 힘들었기 때문인지 오빠에게서 무기력한 노총각의 그림자가 보일 때마다 마음이 뒷걸음질 쳤다. 나이 든 사람의 습관과 태도는 잘 바뀌지 않으니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것 말고도 챙겨야 할 일이 많았고, 이사도 그중 하나였다.



전세 대출 알아보러 왔는데요,

채 앉기도 전에 어떻게 오셨냐고 묻는 직원에게 대답하며 혹시 이율 우대 받을 수 있는지도 여쭤 보고 싶다고 했다. 신분증을 달라더니 직원이 나를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신혼부부세요?"


그랬으면 좋았을 뻔했지만.......


"아, 제가 결혼은 아니고, 아이들이 있어요. 이혼했어요."


머쓱하게 대답한 후 상담을 진행했고, 이런저런 항목에 체크한 뒤 필요한 서류 목록을 받았다. 얼마나 대출이 되려나 묻고, 이렇게만 준비하면 도르마무를 하지 않을 수 있는지도 물었다. (도르마무 소리에 이 악물고 웃음을 참느라 버퍼링이 걸린 젊은 직원을 보며 도르마무가 그렇게나 웃긴 말인가도 생각했다.)


대출 상담을 받으러 가면 마음이 쫄릴 수 있다는 언니의 사전 공지가 있은 덕분인지 조금 낯설기만 했을 뿐, 불편한 것 없이 상담을 잘 마쳤다. 미혼이며 유자녀라는, 나의 새로운 이름도 발견했다. 확답은 못 받았지만 어느 정도 대출각을 확인하고서 본격 집 보러 다니기도 시작했다.  


그러다 만난 어느 부동산 아주머니는 남의 일에 관심이 많고 호구 조사를 좋아했다.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는 동안 아주머니는 내가 식구가 셋인데 애가 둘이라는 사실을 듣고서 내 상황을 알아차린 듯했다. 어색한 정적이 흐르려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공기가 바뀌면서 이 달갑지 않은 대화 주제도 바뀌길 바라던 그때.


"아유, 추운데 애들 데리고 이사하느라 무슨 고생이야~?"


나쁜 의도가 없는 줄은 알지만 한숨처럼 튀어나온 아주머니 말에 잠자코 동의하기 싫었고, 순식간에 나는 웃으며 입을 뗀 뒤 어쩌면 부동산 아주머니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건네고 싶은, 주문 같은 말을 했다.


고생 아닌데.


포장은 이사 아저씨들이 다 해 주고, 저는 이참에 집 정리 한 번 싹 하고 좋은데."


옛날 아낙네들 고생에 비하면 나는 꿀을 빠는 중일 테지.


큰 애 손 잡고, 작은 애는 등에 업고 봇짐 지고 이사하는 거였으면 언젠가처럼 길 가다 주저앉아 울었을 거다. 대출 상담도, 집 알아보러 다니는 것도 매일 하고 싶을 만큼 기다려지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잠깐 이렇게 지나가면 더 낫게 살 수 있는 거라서, 그래서 하는 거 아닌가. 혼자서는 다 처음 해 보는 일인데, 내가 대차게 잘 살아 보려는데 아주머니의 아무 말 때문에 기껏 다잡은 놓은 마음이 허물어지면 곤란하다.


사실 상담 받고 집 보러 다니며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자주 할 일 없는 좋은 경험이라고도 생각했다. 다른 부동산 아주머니 한 분은 집을 보고 내려오며 얘기를 나누다가 "애기 엄마가 사람이 순수하고 어쩌고 저쩌고" 라면서 내가 이런 일에 있어 경험이 별로 없고 야무지지 않은 걸 돌려 까고 우위를 점하려 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러니 나는 하나씩 헤쳐나가면서 이제라도 똑쟁이가 되면, 스트레스 대처에도 더 능숙해지면 되는 거다.


먼저 연락이라도 해서 "오빠, 당근 하는 것 좀 도와주세요." 하면 오빠가 신이 나서 한 시간 거리에서 차를 끌고 오겠지만, 벌써 라면을 몇 봉지씩 끓여 먹겠지만 나는 일단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살기로 했다. 나한테 필요한 시간이고, 이 시간을 잘 보내면 나는 더 괜찮아질 수 있으니까. (엄마 위경련 때문에 죽 먹고 테레비를 많이 본 아이들은 좋았겠다. 모쪼록 이사가 아이들에게는 설레고 즐거운 일로만 남길.)




대문 흑백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포대기 그림 출처: 한재휘, & 이은진. (2020, February 23). 한국 전통 포대기의 유형과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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