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엔 역시 사달이지
추석이라 부모님 댁에 갔는데 이모와 사촌이 왔다. 사위는 바빠서 못 내려왔다는 엄마의 전화 소리를 진작 들었던 나는 새벽에 올라가야 한다는 핑계로 초저녁부터 방구석에서 침대와 한몸이 되기를 선택했다. 공주랑 왕자는 격하게 환영 받고 예쁨 받으며 손님들과 거실에서 아주 사이좋게 잘 놀았다. 너무나도 잘 놀아서 다음날 사촌이 우리 애들 주말에 아쿠아리움 데려가도 되냐고 문자를 보낼 정도로 말이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사촌네 차를 타고 아쿠아리움으로 가는 동안, 가서 구경하는 동안, 다 보고 집으로 돌아오며 수다를 떠는 동안 어린 왕자 입에서 "아빠집" 소리가 안 나올 수 없다. 나는 아이들과 무관한 자리에서는 굳이 이혼을 숨기지 않지만, 우리 엄마가 거짓말까지 하며 애써 가려놓은 진실이 아이들 때문에 드러난다면 마음이 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아빠랑 따로 산다는 사실을 숨기라고 말하기도 싫었다.
결국 아이들에게 다른 일정이 있어 그날은 시간이 안 된다고 숙제하듯 답장을 했다. 언제까지 친척들 앞에서 이혼 안 한 척을 해야 할까 자괴감이 들려는데 마침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잘 올라갔냐는 안부 연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모한테 전화를 받았다며 운을 뗀 엄마가 장황하게 말을 이으셨고, 긴 말의 요지는 "이모가 알아서는 안 된다," 그러니 "아이들을 교육해라," 이 두 가지였다.
남의 말을 옮기는 여러 기술 중 '패러프레이징'이라는 방법이 있다. 특히 영어에서는 전체 의미를 이해한 뒤 동어 반복이 되지 않도록 ‘같은 내용을 새로운 표현을 사용하여 전달'하는 방법으로 통하는데 내가 이번에 선택한 것도 바로 이거였다.
"그러니까 엄마 말은, 이모가 나 이혼한 걸 아는 게 싫으니까 애들 입단속을 하라는 거지?"
"너는 같은 말이라도 표현이 그게 뭐니."
"교육을 하라는 게 결국은 이혼 얘기를 하지 않도록 애들 입을 잠그라는 거잖아. 숨겨야 한다고 가르치라는 거잖아. 엄마, 나는 그렇게는 안 하고 싶어. 떠들고 다닐 일은 아니지만 애들한테 숨길 일이라는 인식은 안 주고 싶어."
"아니 지금 상황이 좀 그러니까."
나름대로 이유를 설명하는 엄마의 사고를 따라갈 수는 있지만 썩 반갑지는 않았다.
"엄마, 그리고 좀 전에 내가 애들 다른 일정 있어서 시간이 안 된다고 답장했어. 아쿠아리움 다녀오면 애들은 좋아하겠지만 거짓말시키고 숨기라고 하기가 싫어서 그냥 못 간다고 얘기했어. 우리 단톡방에도 올렸어."
엄마는 그랬냐고 알겠다고 하더니 들어가시라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엄마가 전화를 그렇게도 끊을 수 있는 사람인지 나는 처음 알았다. (아마도 거의 처음?) 씁쓸하지만 괜찮기로 했다. 할머니가 되도록 늘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살아오신 엄마 아닌가. 가끔은 이렇게 자식이 아닌 자기 자신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엄마 모습을 보는 것도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부터 자식이 잘 되어야 엄마가 잘 되는 구조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라고 크게 다를 수 있을까. 아이가 실패해도 나는 안 실패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이가 성공하면 그건 나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내 과업을 아이의 과업과 잘 분리해서 인식하고 살면 좋겠다고, 엄마를 보면서 나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였든 엄마의 봉사와 희생에는 숭고한 면이 대단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