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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Aug 14. 2023

여름인데 상그리아 한 잔 어때요?

더위가 사라지기 전에 꼭 한 잔 마셔요, 우리.


겨울 음료로 유럽의 쌍화차 뱅쇼가 있다면, 여름 음료로는 유럽의 화채 상그리아가 있다. (산소 같은 아메리카노는 논외.) 내가 가내 상그리아 제조를 처음 시도한 게 십오 년도 더 된 일이니 나의 상그리아 제조 구력은 뱅소 제조 구력보다 더 오래되었다.


상그리아를 처음 먹은 건 이십 대 초반 외국에서 스페인 친구를 만나면서였다. 여럿이 모이는데 친구가 다정하게도 자기가 전날 미리 만들어 뒀다며 레드와인에 씨트러스계 과일과 이것저것을 넣은 음료를 나눠 줬고, 그 시원하고 청량한 맛에 이탈리아 친구, 터키 친구, 리비아 친구, 스위스 친구 모두 아주 감탄했다.


그날 이후로 집에서 가끔 해 먹다가 결혼 후에는 여름이면 레몬청을 만들고 상그리아를 만들어 남편과 나눠 마셨다. 손님이 올 때도 가볍게 나눠 먹기 좋았다. 가족, 친구들이 모일 때 종갓집 큰손 스타일로 만들어 먹으면 더 좋은 이 상그리아 만드는 법을 공유해 본다.



없으면 안 되는 필수 재료


레드 와인, 레몬, 오렌지 주스. (고추장 만들 때 고춧가루가 있어야 된다는 식.)


- 레드 와인: 뱅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비싼 와인은 안 된다. (비싼 거는 순정으로 먹어야 한다.) 저렴이를 쓰되 도수가 11~13도 정도는 되는 와인이면 합격. 도수가 낮은 와인으로 만들면 나중에 밍밍하다. 스윗한 거냐 떫은맛이 강한 거냐는 크게 상관 없다. 나중에 단 거 넣을 때 조절 가능하다. (취향 문제.)


- 레몬: 달콤 쌍큼한 맛으로 먹는 쌍그리아인 만큼 레몬 반 개는 필수. 예뻐 보일 레몬이랑 레몬즙을 같이 넣어도 되고, 귀찮으면 레몬즙만 반 컵쯤 넣으면 된다.


- 오렌지 주스: 펄프까지 들어간 고퀄 주스는 안 좋다. 건더기 없고 적당히 달달한 오렌지 주스가 낫다. 주스는 한 컵쯤 넣으면 되는데 무서우면 반 컵 넣고 간을 보면서 더 넣으면 된다.



입맛 따라 가감 가능한 재료


브랜디, 좋아하는 과일, 단 거(시럽, 설탕 등), 탄산수, 진저에일, 온갖 과일청


- 브랜디: 도수가 높고 가격도 낮지는 않으니 취향과 지갑 두께에 따라 넣거나 말거나 하면 된다.

- 과일: 오렌지, 사과, 복숭아나 각종 베리류를 냉장고 사정에 맞게 넣는다. 모든 과일은 잘 씻어서 적당히 얇게 챱챱 썬다. 과일은 덩치 있는 과일 기준으로 반 개씩만 써도 충분하다.  

- 단 거: 시럽도 되고 설탕도 된다. 차게 먹는 음료이니 설탕을 사용한다면 와인을 따로 소량 데워 설탕을 녹인 다음 섞도록 한다.  

- 탄산수/진저에일: 와인에이드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뽀글뽀글 탄산수를 쓰면 좋은데 제법 달달한 모스카토를 좋아한다면 진저에일을 쓰거나 단 거를 많이 넣으면 된다.

- 온갖 과일청: 기력이 없거나 기력을 아끼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건더기 걸러낸 상큼한 과일청이면 다 된다. 과일 챙기기 귀찮고 너무 단 것도 싫은 나는 아빠표 복숭아청이나 자두청을 반 컵 넣는다. 아빠의 사랑도 같이 드링킹 할 수 있다.



언제 어떻게 만드나요?


마시기 3~4시간 전, 혹은 하루 전. 저녁에 손님이 오면 점심때 만들어도 되고, 점심때 먹으려면 아침 일찍이나 전날 밤에 만들면 된다.

와인 1병을 쓸 때 기준으로 1.5리터 이상 되는 저그나 피처에 무거운 과일 먼저 깐 뒤 단 거랑 와인 넣고 냉장하면 끝. 잔에 담을 때는 얼음 만땅에 부채꼴 모양으로 곱게 썬 과일 조각도 넣고 상그리아를 따르면 된다. (나는 혼자 먹을 때는 국물만 넣어서 마신다.)


탄산수나 에일 사용자를 위한 팁: 탄산이 다 빠지면 맛이 이상해지니까 탄산수나 유사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 먹기 직전에 탄산수를 적당히 추가하자.


어떤 분들께는 "적당히"라는 이 단어가 불편할 수도 있는데 집집마다 된장 맛, 김치 맛이 다른 것처럼 홈메이드라는 게 원래 그런 법. 마시는 사람이 즐거울 수 있으면 된다. 너무 빨리 줄어드는 맛이 탄생하면 더 좋고 말이다. 먹으면서 간을 보자. 우선은 경험이 필요하니.  


여름인데 진짜 왜 쌍그리아를 안 마실까?


사 먹는 것보다 만들어 먹는 게 더 맛있는 음식이 가아끔 있는데 나는 상그리아가 그렇다. 신선하게 만들어 먹으면 병에 든 완제품보다 훠어어얼씬 맛있다. 레드 와인을 얼음 만땅 넣어 차갑게 즐겨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분명 빨리 줄어드는 맛이 될 테니까 3일을 넘기지 말고 다 마시라는 말은 쓰지 않겠다.


빈 둥지 증후군을 날려 준 내 주말 노동주. 덕분에 일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한 뒤 아이들을 맞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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