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과 함께 그날이 왔어요
괜히 그런 생각을 하는 날이 있다.
어느 날 병원에서 예고도 없이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는 말을 안 들었더라면, 오래 참더니 그랬구나 위로 받는 일이 없었더라면, 힘들어서 그렇게 됐나 보다 하는 말이 아니었더라면, 그랬다면 나는 더 잘 참았을까, 그래서 이혼하지 않고 그냥 계속 살았을까.
아직 어리던 꼬마들을 혼자 집에 두고 대학 병원으로 떠나던 새벽이면 그런 생각은 더 선명해지곤 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생각인 줄은 잘 알았지만, 내가 단지 그 양성 종양 진단 때문에만 이혼을 결심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미 괴로운 날을 날을 오랫동안 보내고 있던 나에게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고통이었고, 차곡차곡 쌓인 여러 계기 중 하나가 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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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가 된다거나 이혼녀가 된다거나 하는,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꼬리표가 연달아 생기니 사는 게 썩 달갑지 않았다. 그래도 몸에 남은 흉터 때문에 마음까지 흉이 지지는 않도록 신경 쓰며 지냈다. 그 때문에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는 부족한 순간이 많았고, 지금도 그래서 미안하다.
이혼에 적응하던 와중에도 진료는 꼬박꼬박 받으러 다녔다. 강남의 아침은 초보 운전자에게 꽤 가혹했는데 3개월에 한 번, 6개월에 한 번, 마침내 일 년에 한 번, 그렇게 다니는 동안 나는 점점 덜 긴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전에 찍은 CT 결과를 들으러 가면서 부디 마지막 진료일이 되기를 바랐던 날, 가장 여유 있게 병원에 도착해 차례를 기다렸다.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나는 주치의 교수님께 아주 큰 빚을 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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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고, 나는 두근두근 진료실에 들어가 1년 만에 만난 교수님과 밝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제 아무 문제없다는 얘기만 들으면 되겠다고 내심 기대에 가득 차 있을 때 모니터를 보며 교수님이 말했다.
“근데 이게 약간-”
순식간에 긴장이 확 되었다.
"자궁이 약간 레트로벌티드예요."
이렇게 다행일 수가. 자궁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지만 재발이나 전이가 아니라면 뭐든 다 괜찮았다.
"교수님, 자궁이 레트로벌티드면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글쎄요, 생리통이 더 있거나 출산할 때 뭔가 좀 다르게 아프려나? 저도 레트로벌티드 자궁이에요. 여기 그렇게 나와 있어서 그냥 알려 드렸어요."
(교수님과는 그때도 TMI를 주고받았는데 흥미롭게도 오늘도 그렇게 되었다.)
"아 저는 생리통은 별로 없고, 출산은 이제 다 해서 괜찮아요ㅎㅎ“
리던던트 어쩌구 하는 대장 얘기가 나오면서 교수님도 보조쌤도 이게 뭐냐며 서로 묻는 일도 있었다. 나도 리던던트가 대장에도 쓸 수 있는 말인지를 물으며 다 같이 단어를 검색한 후 이것 역시 아무 문제가 아님을 확인하고 잠시 아무말대잔치를 나눴다. 그리고 정말 필요한 얘기를 들어야 할 순간이 왔다.
"이제 거의 5년 되었죠? 다 괜찮아요. 전이도 없습니다."
처음 조직 검사 결과를 들었던 그날부터 위험하지 않은 암인 줄 알고 있었고, 별일 없을 줄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 졸인 적이 없었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오면서도 몇 번이나 눈물이 날 뻔했는걸.
"오, 좋네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제 안 와도 되는 거죠? 이제 안 올게요, 교수님!"
나는 그렇게 암 환자를 졸업했다. 주차장으로 가면서 친정 단톡방에 소식을 전했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하나 둘 소식을 전했다.
애써 가꿔온 내 소중한 세계가 무너져 내리면서, 아무리 괜찮으려 해도 괜찮을 수 없던 시간이 있었다. 그런 시간들 역시 성실하게 흘렀고, 기꺼이 손 내밀어 준 가족들과 지인들이 보내온 단단한 지지는 발 디딜 곳과 마음 기댈 곳이 되어 주었다. 참 고마웠다.
가불 받듯 여생의 슬픔을 왕창 땡겨 썼다고 해서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라 착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어떤 힘든 일을 또 마주하게 되었을 때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하며 지나갈 수 있을 거다. 무너지고 일어서는 밀도 높은 경험을 했으니 인생에 그런 요긴한 특혜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
안녕, 악성 종양아. 고마워, 덕분에 정신 잘 차렸어.
설령 또 만난대도 이젠 괜찮을 수 있을 듯하지만
그래도 함께해서 정말 별로였고 다신 보지 말자!
그리고 우리 꼬마들.
엄마가 가끔 새벽에 병원 가는 건 알아도 왜 가는지는 잘 몰랐던 아이들. 저녁에 일부러 치킨과 감튀를 먹었다. (맥주를 먹어야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달까.)
남매 둘이서 엄청 싸워서 치킨 못 먹고 혼나기까지 했으니 잊을 수 없는 저녁이 되었을 테지. 언젠가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실은 그날이 엄마가 암 졸업한 날이라고 얘기하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