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암이 아니었다면 끝이 조금 달랐을까
외국 생활을 하던 중 어쩌다 몸에 뭐가 났다는 걸 알았다. 내가 있던 곳은 코로나에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고, 별일 없을 거라 생각하며 코로나 2차 대확산이 주춤하길 기다렸다가 가정의학과를 찾았을 때 내 담당의는 가벼운 수술을 하면 된다고 했다.
“대학병원에 가서 수술하려면 몇 개월은 기다려야 하고, 여기에서 하면 내일모레 수술할 수 있어.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긴. 애들 등교시키고 오면 딱일 것 같은 아침 9시로 수술시간도 매우 나이스하게 잡고는 내일모레 만나자 인사한 후 가벼운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왔다.
그렇게 수술 당일이 되었고, 나는 작은 혹을 절제하러 가정의학과에 갔다. 아무 진료가 없다며 옆방 의사가 수술을 같이 하겠다길래 알겠다고 했고, 밖에서 굴삭기가 땅을 파고 드릴로 아스팔트에 구멍 내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베드에 엎드렸다. 상의를 탈의한 채 뭔가 깊다거나 안 좋다거나 하는 간단한 말만 알아들은 통에 자꾸만 불안감이 커지던 차, 갑자기 의사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Shit!
아니, 그냥 쓋도 아니고, 핀셋과 메스를 잡고 나를 수술하던 의사 입에서 쓋이라니.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Oh, what was that?”
별거 아니라며 웃는 의사에게 방금 그 쓋은 살면서 들은 최악의 쓋이었다며 몸이 들썩이도록 깔깔 웃는 동안 의사는 잠시 수술하던 손을 멈춰야 했다. 간단한 수술이라더니 시간이 제법 흐른 것 같았고, 마취도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수술 시작할 때 의사가 시킨 대로 아프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의사가 아프냐, 잠깐만, 하고는 치과에서처럼 절개한 부분 양쪽으로 뽁뽁뽁뽁 마취주사를 다시 놔줬다.
“아프니?"
“누르는 느낌은 나는데 통증은 없어요."
잠깐 기다렸다가 수술은 다시 시작되었고, 나는 중간중간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ㅇㅏ 아파요, 하며 다시 마취주사를 맞고 잠시 기다렸다 수술받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봉합이 끝나고 밴드까지 붙인 후 의사와 마주 앉았을 땐 어느새 10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5분짜리 수술이라더니 의사 두 명이 붙어 한 시간이 넘게 걸렸어도 별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다. 그러니 씻고 나서 바꿔 붙일 밴드 한 장만을 받아 들고는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나는 혹을 뗐다는 생각에 그저 홀가분만 하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엄마는 그때 절제한 조직 사진을 찍어 보냈을 때 이미 단순한 혹이 아닌 줄은 알았다고 했다.
실밥 제거랑 조직검사 결과 확인을 위해 일주일 뒤 다시 병원을 다시 찾을 때만 해도 의사한테서 뜻밖의 얘기를 들게 될 줄은 몰랐다. 상처는 좀 어떠냐고 물은 의사는 실밥부터 제거한 후 조직 검사 결과를 알려 주겠다고 했다. 베드 위로 올라가 몸을 맡기고 실밥이 다 제거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의사와 마주 앉았다.
“잘 낫는 중인 것 같아. 덧나지 않았고, 잘된 거지. 이제 랩에서 온 결과를 얘기할 건데,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좀 그런데,"
그러더니 의사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나왔다.
There’s good news and bad news.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뭐부터 들을래?”
귀를 의심했다.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Pardon? Really?” 잠시만요. 진짜로?
“Yes” 응.
드라마에서만 듣던 말. 평생 의사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좋은 소식부터 듣겠다고 하자 의사가 말했다. 뻔한 얘기지만 좋은 소식은 이미 우리가 혹을 제거했다는 거란다.
“And the bad new is?” 나쁜 소식은요?
나쁜 소식은 그게 우리가 생각한 혹이 아니라 종양이었단다. 그것도 나쁜 종양. 그러면서 나쁜 종양, bad tumor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의사가 묻길래 나는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종양이라니… 나쁜 종양이라니, 종양이 나쁘다는 게 무슨 뜻이었더라.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눈알을 굴리는 사이, 의사는 말을 이었다. 형광펜 칠한 부분이 정확한 병명인데 희귀한 병이라고, 솔직히 말하면 자기도 의학 사이트에서 찾아봐야 했는데 좋은 점은 치사율이 5프로 정도로 낮고, 100% 제거만 잘 되면 훨씬 더 낮다고, 그런데 제거가 다 안 되면 남은 종양 세포가 자라서 퍼질 수 있다고 전이를 언급했다.
“Metastasis? You mean it can spread? To other parts of my body? Randomly?”
전이요? 그러니까 그게 몸의 다른 부위로 퍼질 수 있다는 거죠? 무작위로요?
“Yes. I am sorry." 맞아. 안타깝지만.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소식을 전했다. 네이버에 검색해서 한국어 병명을 알아냈고 이게 뭔지 파악했다. 다행히도 굴지의 대학병원에 서로 가끔 안부를 묻곤 했던 병리학과 교수님이 있었다. 랩에서 온 결과지를 바로 사진 찍어 보냈고, 나는 실시간으로 상담을 받으며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들어가는 대신 외국에서 2차 수술을 받기로 했다.
소식을 들은 친정 식구들은 나를 무슨 췌장암 환자 취급했다. 엄마는 가서 돌봐 주지도 못 하고 어떡하냐며 걱정이었다. 유난을 떠는 가족들에게 나는 무슨 다른 암 말기가 아닌 게 어디냐며 괜찮다고 했다. 그 말로 나 자신을 위로했다. 안부를 묻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내 종양을 티눈 취급했다. 그런다고 암이 티눈이 되지는 않았지만.
되어 본 적 있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암환자가 되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되어 본 적 없는 분들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갑자기 암환자가 되면 기분이 매우 안 좋다.
참고 또 참으며 고생 고생하고 살면서 늘 내 몸에서는 사리가 엄청 많이 나올 거라고, 원효대사보다 내 몸에 사리가 더 많을 거라고 종종 우스갯소리를 하며 살았다. 그런데 악성 종양이라니. 사리가 아니라 암이라니.
지나가는 말인 듯 남편에게 그 말을 흘렸다. 남편은 꼭 그렇게 생각하진 말라고 했다. 나도 알고 있다, 스트레스와 내 암에 아무 유기적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하지만 고생 끝에 암이라는 내 뇌피셜은 나를 많이 슬프게 했고, 남편도 슬프게 했다. 그런 와중에 학업 진행 상황이 좋지 않아 수 년 간의 외국 생활을 마무리할 날짜가 다가왔다. 정신없이 귀국 정리를 하고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실밥을 푼 지 일주일도 안 되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