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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Apr 17. 2023

내 슬픔을 웃어넘기지 말아요

3. 다시 시작한 글쓰기의 끝   


남편 없고 애들 아빠 없는 육아 기간이 길어졌다. 가슴 답답한 시간이 이어졌다. 오래 이어온 취미이자 오락인 글쓰기를 난생처음 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의 가족에게도, 외국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도 꺼낼 수 없었던 서글픔과 쓸쓸함. 쌓이고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한 채 한참 지내다 보니 슬픔이 점점 커져 삼킬 수도 없게 되었다.


지인 통해 알게 된 한국의 어느 동네서점지기가 꾸린 비대면 글쓰기 모임에 돈을 내고 들어가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강제로라도 슬픔을 비워내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한 마음을 다 드러낼 수는 없었지만 가슴을 짓누르던 아픔을 활자로 조금씩 내어 보이던 어느 날 문득 구차하고도 재미있는 뭔가를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를 잡았다. 성냥팔이 소녀가 차라리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 시를 썼던 그날 나는 왈칵 쏟아지는 눈물이 시를 쓰기도 하는구나, 깨달았다.


순식간에 세 편을 연달아 쓰고 진이 다 빠진 자리에 도비의 처량하고 망가진 마음이 텍스트로 남았다. 그 마음을 남편에게도 알려 주고 싶었다. 웃긴 깔때기로 짜낸 나의 피고름을 알아봐 주었으면 하고 도비의 시 세 편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는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나의 슬픔은 그렇게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얇고 하찮은 마음이 아닌데.






시를 써 보였지만 남편이 웃어넘긴 후 나는 시를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맥북에 고이 묻어 두었다. 답답함이 커져가는 동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러다 남편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져 숨쉬기가 버거웠을 무렵 만난 친구에게 어렵게 마음을 이야기하며 묻어 두었던 시를 꺼내어 보였다. 무슨 인스타그램 피드 내리듯 도비의 성냥개비 시를 보던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 외국 가서 방치 당했어? 가서 방치 당한 거야?"


첫째 임신 때부터 그랬다고 미소 지으며 대답했는데, 나조차도 그제서야 이 슬픔이 아주 해묵은 슬픔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지만, 고생했다고 낙이 그리 쉽게 오지는 않는다. 고생 끝에 암이 오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내 길고 긴 마음 고생과 몸 고생 끝에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결코 얇지도 하찮지도 않았던 그 슬픔만큼이나 단단하게 굳은 결심이었다.


기필코, 이혼. 

나는 반드시 이혼을 하고 말겠다는 결심.


그리고


기어이, 이혼.

결국 나는 밀도 높던 슬픔이 옅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안도하며 이혼하는 중이다.


공주 태교 일기라고 쓰고 임신 넋두리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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