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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Dec 09. 2022

마늘을 다듬던 칼이 날아들었다

5. 사라지고 싶은 마음


마늘. 마늘을 다듬던 칼이 순식간에 공중을 날아 어머님과 나 사이 바닥으로 챙-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날붙이보다 더 날카로운 무차별 폭언이 공기를 울리며 날붙이 소리를 삼켰다.



뭐 저런 게 다 있냐, 진짜 살다살다 저런 며느리는 듣도 보도 못했다, 지독하다 지독해, 대학 나왔다고 나를 계속 무시를 하냐,
지가 뭐가 그렇게 잘나서 잘해 준다고 해 주는 것도 다 트집을 잡냐, 아니, 빨래한 거를 방에다 갖다주면서 방에 지저분한 거 치워 주면 그냥 고맙다 그러면 될 거를, 대단하다 정말 대단해, 시팔 것, 꼴도 보기 싫어, 꺼져, 얼른 꺼져버려.


차라리 진짜 폭탄이라도 터져서 나를 뿔뿔이 흩어지는 살점으로 만들었다면, 내가 공중으로 사라졌다면 더 좋았을 텐데 나는 왜 사라지는 것조차 할 수 없을까. 무력감이 이명이 되어 머릿 속을 가득 채웠다.


아내의 괴성에 놀라 방에서 나온 아버님은 전에도 그랬듯 말릴 수 없이 폭주하는 당신의 아내에게 다가가기보다는 어리고 말이 통하는 며느리 곁에 가 서기를 선택했다. 주저 앉지도, 떠내려가지도 못한 채 바닥에 붙은 두 발로 빌어먹지도 못할 몸뚱이를 힘없이 버텨내는 며느리에게 아버님은 다가와 네가 참으라는 눈짓을 했다.


그러게요. 참지 않으면요.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폭발음을 들으며 그렇게 또 참았다.


나는 다만 외출 전 내가 살짝 열어 놓고 나간 창문이 돌아왔을 때도 그대로 조금 열려 있었으면 했다. 내가 외출만 하면 어머님이 방에 들어와 청소하고 나가는 일을 제발 그만하셨으면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 기싸움이라도 하신 걸까. 한번도 빠짐없이 방에 들어와 책상 위, 수납장 위 물건을 다른 데로 옮겨 놓으시고, 일부러 조금 열어놓고 나가는 창문도 돌아오면 그대로 열려있는 법이 없는데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린 걸까.


그렇게 욕을 먹을 일이었을까. 귀국한 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시차 적응도 다 못 했는데, 암 수술하고 실밥 뽑은 지 보름도 안 되었는데, 방이 돼지우리보다 더 더럽다고 더러워 죽겠다고, 저렇게 더럽고 지저분한 애는 살다살다 처음 봤다는 욕을 시어머니에게 들었다. 


세상 어느 며느리가 방에 어머님이 들어오는 걸 반가워할 수 있을까. 방이 더럽다고 화를 내셔서, 혼을 내셔서, 일부러 더 열심히 청소해 놓고 다녔다. 대체 뭐가 부족해서, 뭐가 맘에 안 드셔서 매일같이 들어와 치우고 나가시는 걸까.


나는 그저 내가 지내는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숨통을 트고 싶었다. 활짝 열어놓지도 못한 창문 틈, 그 틈 만큼의 숨통이라도 트고 살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그 작지만 절실했던 해방감을 위해 며칠, 그리고 또 며칠을 고민하다가 차릴 수 있는 모든 예의를 다해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어머님, 제가 이제 창문 잘 닫고 다닐게요, 이제 방에 창문 닫으러 안 들어 오셔도 괜찮아요, 더럽다고 하셔서 매일 아침마다 나가기 전에 청소도 열심히 했는데 어머님 눈에 차게는 못 해서 죄송해요, 앞으로는 더 잘 해 볼게요, 방에 계속 들어와서 확인 안 하셔도 되게 해 볼ㄱ"


말을 채 다 끝내지도 못했는데 어머님 손에 있던 칼이 내 눈 앞 바닥으로 날아들었다. 어머님의 입에서는 수류탄 같은 고함이 떨어졌다. 아아, 며느리란 참 얼마나 힘 없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나더러 참으라 눈짓하며 팔꿈치를 쿡 찌르는 아버님께는 곤란한 마음과 잘 버티겠다는 의지를 눌러담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는 또 한 번 참았다.


남은 게 있는지도 모를 의연함을 소진해 나가는 삶은 대체 언제까지 이어질까. 언제나처럼 그냥 참고 넘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러다간 정말 보란 듯이 집 앞 나무에 목을 매고 싶어질 것 같기도 한 걸. 그러면 어머니는 또 나를 저주하겠지만 어차피 나는 들을 수 없을 테니 상관없지 않을까.

 

꺼지라는 말을 듣고 집을 나선 아침, 나는 밥 한 술 넘기기가 죽을 만큼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숨 쉬듯 눈물이 흐르니 자리에 앉아 있을 수도 없어 몇 시간을 후미진 복도에서 가만히 직립해 있었다. 그러다 아버님 전화가 왔다.


어떠냐, 괜찮냐, 밥은 좀 먹었냐. 밥 먹어라. 저녁 사 먹고 천천히 집에 들어와라. 할머니는 원래도 그런 스타일인데 나이 들고 남성호르몬이 많이 나와서인지 점점 더 심해진다. 할머니가 딱히 너한테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거이 아니다. 잘 참아 줘서 고맙다. 니가 고생이 많다.


참는 아내로 사는 것도 너무 힘들었는데 참는 며느리로도 살라니. 다 도려내면 끝인 암 덩어리보다 이게 더 가혹한데 아버님은 또 날더러 잘 참으라고 말씀하신다.


사는 건 정녕 이렇게 버거울 수밖에 없는 걸까. 나는 끝없이 사라지고 싶었다. 





잔뜩 날 선 상태로 살아가는 삶은 너무 힘들다. 남편도, 그의 어머니도 모두 나의 행복과 쉼을 방해한다. 나 자신 하나 감당하는 것도 버거우려는데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다들 내 긴장을 고조시킨다.

 

남편과 베개 다음으로 내 슬픔을 잘 아는 친구를 찾았다. 어디에도 말 못 할 사연을 모두 얘기하고 내 긴장과 불안을 털어놓았다. 그녀가 말했다.


 “언니, 그 무엇보다도 언니가 가장 소중해요.

"언니가 안전하게 잘 지내는 게 중요해요. 거기에서 사는 게 언니를 해쳐요. 그러니 거기에서 나와요."


그랬다. 나를 해치는 위험으로부터 나는 나를 안전하게 지켜야 했다. 그래야 나의 아이들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안전함이란 단어를 이렇게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었을까. 끝을 알 수 없는 긴장과 불안으로부터 그만큼 안전하고 싶었다. 안전의 비용으로 본성을 거스르는 선택을 지불해야 한대도 말이다.





사건이 있고서 1년이 지나 친구에게 이혼 의사를 밝히며 이 글을 보여줬다. 친구는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냐고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아아, 이게 경찰을 부를 수도 있는 일이었구나. 나는 몰랐다.


당시 남편의 분가 결정에 내가 어렵사리 동의했고 남편이 시부모님께 이 소식을 전하자 어머님은 아버님을 통해 아들을 호출했다. 내가 얼마나 고생하고 힘들었는지를 이제야 알았으니, 앞으로 잘해 주겠다고 나가지 말고 같이 살자고 말이다.


우습게도 나는 어머님 말대로 하고 싶었다. 나만 포기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딱히 숨 붙이고 살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이러나 저러나 대단히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그냥 그렇게라도 가족의 모습을 해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이사를 나왔고, 나는 조금 덜 불행해졌다. 그리고 믿기 힘들 정도로 우스운 얘기지만, 나는 어머님과 잘 화해했다. 주말이면 바쁜 남편 없이 두 아이들만 데리고 시댁을 찾아 먹고 마시며 편하고 즐거운 시간도 종종 보냈다. 어머님이 편찮아지시면 병간호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런 일이 있은 후에도 어머님과 다시 잘 지낼 수 있게 되었는데, 어머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어머니랑 같이 앉아 밥도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어쩐지 남편이랑 만큼은 다시 잘 지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러기가 싫었다. 그렇게나 힘들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 반 년이 더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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