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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Sep 26. 2022

나는 성냥팔이 소녀가 부러웠다

2. 도비와 성냥팔이 소녀

성냥개비 1


성냥 사세요

성냥


성냥 사세요

성냥이요


추운 겨울 성냥팔이 소녀는

내다 팔 성냥이라도 있었다


성냥 주세요

성냥


성냥 주세요

성냥개비 하나만요


추운 겨울 성냥을 구걸하던 도비는

꽁꽁 얼어붙으려 했다


성냥개비 좀 주세요

한 개라도 괜찮아요


도비의 남편은 시간이 없었다

도비의 남편은 바빴고

도비의 남편은 피곤했다


도비의 남편은 공부를 해야 했다


함께하는 시간을 불쏘시개 삼아

도비의 남편은 공부했다


남은 성냥개비는 없었다






성냥개비 2


성냥 주세요 성냥

성냥개비 하나만요


커피 한 잔만요

놀이터 한 번만요


성냥 살게요 성냥

성냥개비 삽니다


두 아이가 자랐고

도비는 얼어붙었다

도비는 금이 갔다


텅 빈 속이

그제야 드러났다


도비의 남편이

성냥을 들고 왔다






성냥개비 3


성냥은 필요 없어요

도비를 놓아주세요


도비의 남편이

성냥개비를 내민다


도비는 기운이 없어요

거기다 놓고 가세요


채 쪼개지도 않은 장작을 가져와

도비의 남편이 불을 피운다


도비는 눙물이 난다

아니 연기가 너무 맵네요






21년 봄, 도비는 울고 웃기를 반복하며 한달음에 시를 세 편 썼다. 쓰기가 끝났을 땐, 입고 있던 카디건 양쪽 소매가 흠뻑 젖어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눈물을 많이 쏟으며 썼지만 끝내 모임에는 공개하지 못했던 나의 성냥개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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