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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Dec 06. 2022

서커스단의 코끼리를 아시나요

1. 서커스단의 코끼리  

어린 코끼리를 잡아와 다리에 쇠사슬을 채운 뒤 튼튼한 말뚝에 묶어 두면 처음에는 격렬하게 저항한다. 그러다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되면 자신의 처지에 순응하여 나중에는 썩은 나무 말뚝에 새끼줄로 묶어 놓아도 저항하지 않게 된다. 무기력을 학습한 결과이다.  


췌장이 끊어져 죽은 아이의 소식을 보았다. 월령으로 나이를 말할 만큼 아주 어린 아이였다. 16개월 영아 정인이. 아이 이름에 미안하다는 해시태그를 단 챌린지가 인터넷 여기저기로 퍼진 통에 외국살이 중에도 결국 자세히 알고 싶진 않았던 기사를 클릭해 사건의 전모를 읽고 말았다.


정인이는 대외적으로는 아주 선량했던 한 부부에게 입양된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상식 밖의 폭력을 동반한 학대와 고통 속에서 살아갔다고 했다. 눈을 뜨면 반복되는 일방적 폭력 때문에, 그 작고 어린 아이는 저항할 힘도 없어 마침내 무기력을 학습했을 거라고 했다. ‘산다는 건 원래 이렇게 아프고 힘든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의문이 생긴 건 바로 그때였다. 정인이에겐 너무도 당연했을 고통스러운 일상이 사실은 부당했다면, 사는 게 꼭 힘들지 않을 수도 있다면, 어쩌면 내 삶도 정인이와 궤를 함께하는 것은 아닐까.






나랑 결혼하면서 꽃길 걸을 줄 알았어요?

"여보가 꽃길 걸으려고 나랑 결혼한 거 아니잖아요. 고생할 거라고 결혼 전에 미리 다 얘기했는데 자꾸 힘들다고 하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공부 다 때려치우라는 거예요?"


남편은 참 사람을 할 말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이제 와서 사기결혼이라도 당했다고 생각해요? 다 말하고 결혼했는데 어쩌라는 거예요? 나는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공부를 하려면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 집중력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요.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여보와 차를 마시고 애들이랑 산책도 나가려고 하면 나는 내가 필요한 만큼의 집중을 할 수 없고 공부를 할 수 없어요.


유학을 하려고 장학금 받으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고, 여보가 고생을 좀 했지만 그래도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여보가 경제적으로 덜 고생하는 면도 있어요. 지금도 큰돈을 들여가며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나도 그만큼 더 열심히 하고 있고요.


여보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공부를 관둘 수도 있어요. 여보가 정 버티기 힘들다고 하면 내가 지금이라도 다 그만두고 어디 공장에 가서 일을 하든, 편의점에서 일을 하든, 남들처럼 돈을 벌면서 여보하고 커피도 마시고 아이들이랑 놀이터도 가면서 그렇게 살 수 있어요. 그러면 되겠어요? 아니, 얘기를 해 봐요.”


늘 같은 동영상을 틀기라도 하는 듯 몇 년째 반복되는 장면과 대사들. 안방인지 공부방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방의 커튼 뒤로 쏟아지는 노을빛이 그날따라 아름다워 더욱 비참했다.


결혼 후 곧이라도 유학을 갈 것 같아 교수님께 직접 소개받고도 거절해야 했던 대기업 일자리, 육아를 도맡으면서 이어갈 수 없었던 직장 생활. 어느 하나 내 것이 아니었던 선택도 없었지만, 공부에 몰두하는 사람을 남편으로 두고 온전히 내 것인 선택도 없던 이 삶에 이제 남은 건 무엇일까.


외국까지 나와 아이 둘 육아와 네 식구 살림을 거의 혼자 하면서, 참고 또 참다 말해 봐도 늘 같은 대답을 반복하며 공부에만 몰두하는 남편의 태도에 이제 너무 지쳐버렸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가 또 너무 비관적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떡하나. 남편에 한해서라면 내 비관적인 예상은 빗나간 적이 없는 걸.   


이혼하고 싶어요, 여보.
그래야 인생이 완성될 것 같아요.

홧김에 뱉어낸 말이 되지 않도록, 홧김에 내뱉은 말이라고 그가 착각하지 않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차분히 마음을 전했다. 입을 뗄 때 혹여 눈물방울이 같이 떨어질까 봐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눈물을 모두 비워낸 후였다.


"그래요, 미안해요, 알겠어요."


분명 그렇게 답을 했었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이혼해 주겠다고 한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는데, 귀국한 그는 꼭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전엔 없던 행동을 부단히 이어 갔다. 아니, 사실은 그런 얘기를 꺼낼 정신조차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암 수술 직후 귀국하자마자 어머님과 대단한 사건을 겪어야 했으니까.


그런 시간을 어느 누가 멀쩡히 지날 수 있을까. 그는 내가 사라질 것 같아 힘들다고 몇 년 동안 호소할 때는 귀 멀고 눈먼 사람처럼 굴더니 더는 감출 수 없어 터져 나온 피고름을 잉크 삼아 글을 써 내려가는 나에게 헬렌 켈러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딴에는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니 착해 빠지지도, 못돼 처먹지도 못한 내가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마음 먹었다. 그래서 이렇게 토하듯 글을 쓰게 되었다. 내 슬픔을 모두 비워내기 위해서.


정인이 사건을 마주한 후 일기처럼 글을 쓴 뒤 일 년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고, 2022년 여름과 가을을 지나며 나는 또 일기를 쓴다. 지금부터 보게 될 글들은 그 고된 시간을 꾸역꾸역 버티며 지나온 나의 일지. 그러니 즐겁게 읽어 주시라. 빅재미를 보장할 순 없지만,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는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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