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분리 나흘 째. 아이들은 이 변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엄마, 이혼이 벌써 다 끝난 거야? 그래서 이런 거야?
저녁으로 버거를 사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홉 살 공주가 갑자기 묻는데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올봄부터는 아빠가 저녁을 챙겨 줬었으니까 우리끼리 나와서 저녁 먹는 게 낯설었을 수 있다. 한국 와서도 주말이면 나랑 셋이서만 밥 먹는 게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공주는 이런 변화를 갑자기 겪으며 그런 생각이 든 것 같았다.
그래, 아빠가 떠난 지 이제 겨우 나흘 째인 걸.
“공주야, 밥을 우리끼리 셋이서만 먹은 거랑 그거랑은 별로 상관이 없어. 생각해 봐, 우리 외국 있을 때도 엄마랑 공주랑 왕자랑 셋이서만 아침도 먹고, 저녁도 먹고 할 때가 얼마나 많았니. 친구들 집에 가서 같이 놀 때도, 공주 생일 파티할 때도, 키즈 카페 갈 때도, 항상 엄마랑 공주 왕자가 같이 다녔었잖아. 원래 아빠랑은 그런 데에 같이 가서 논 적이 잘 없잖아. 그렇지 않아?”
“그러네.”
공주의 대답을 듣고서 그리고 아까 버거집에서 우연히 마주친 공주네 같은 반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준영이네도, 준영이 친구네도 애들이랑 엄마들만 와서 저녁 먹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엄마랑 아이들만 밥을 먹는 것과 이혼은 별로 상관이 없어. 이혼을 하든 안 하든, 밥을 엄마랑만 먹는 일은 누구에게나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그러니까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슬펐다. 가만히 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생각도 못한 말이 날아와서.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시간을 그렇게 맞이하게 될 텐데. 공감 능력이 남달리 좋은 아홉 살 첫째는 생각나는대로 다 말하지는 않을 테고, 앞으로는 말하고 싶어도 내 눈치 살피느라 그냥 삼키고 넘어가는 일이 더 많이 생길 텐데.
어디 애들만 그럴까. 나도 앞으로 무슨 일을 겪으면 괜히 우리가 한부모가정이라서 그런가 하고 신경 쓰일 텐데, 또 어쩌다 무슨 일을 겪으면 내가 싱글맘이라서 그런가 하고 서러울 수 있을 텐데. 공주랑 왕자도 자기들은 아빠가 없어서 그런가 싶은 일들이 왕왕 있을 텐데.
그래도 건강하고 밝게 잘 키워보자. 내 부모도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만하면 그럭저럭 좋은 사람으로 잘 자랐지 않았나. 그러니 와르르 멘탈 무너지는 순간이 내 앞에 수없이 많이 놓여 있겠지만 그때마다 다시 두 발 잘 딛고 일어서자. 아이들에게 미안할 땐 조금 미안해하면서, 그러다 슬플 때면 적당히 슬퍼하면서도, 그렇게 힘을 내어 잘 살아 보자.
변호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아무 죄책감도 가지지 말라고. 엄마 아빠 사이에 애정이 없고 긴장이 있는 환경에서 자라는 것보다 행복한 엄마가 있는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꼭 나쁘지 않다고. 그러니 힘을 내자. 그리고 잊지 말자. 내가 느끼는 미안함과 죄책감의 9할은 그 사람의 몫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