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나, 그리고 록히드마틴 (ft. +70%)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트렌디한 걸 재미있어 하니 남들 다 한다는 주식도 한번 해 보고 싶긴 했지만 주린이도 못 되는 나는 동생이 지나가듯 알려준 해외주식 어플을 깔고서도 한참동안 아무것도 안 사고 있었다.
그래도 외국살이를 하다 귀국한 덕분에 한국 와서도 유튜브와 신문으로 외국 뉴스를 계속 접하고 있던 차,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서 나는 드디어 매매할 종목 하나를 결정했다. 그 이름도 듬직한 록히드마틴.
주워듣고 찾아봤던 뉴스 덕분에 솔직히 조만간 전쟁이 날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사실은 '언젠가 한 번은 전쟁이 터지겠지'라는 생각이 더 컸다. 세계 평화 따위는 디즈니 만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개념이니까.
사실 노벨상 수상작은 안 읽어도 뉴베리 수상작은 챙겨 보는 사람이 바로 나다.사랑해요, 아동문학! 사랑해요, 뉴베리 수상작!
그리하여 주식의 ㅈ도 모르고 그저 획 하나만 알면서도 트렌디한 것은 또 좋아하는 이상한 취향 때문에 나는 조금은 근거 있는 자신감에 기반하여 딴에는 거금을 들여 무려 미국 주식에 팔랑팔랑 들어가 록히드마틴을 사 두었고,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진짜로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처음에는 전쟁 소식을 듣고도 그게 내 이익에 어떤 영향을 줄지 미처 생각을 못해서, 앱에 들어가서 확인해 본 건 거의 한 달이 지난 후였다. 그리고 페이스 아이디로 로그인이 되자마자 나는 +70%의 빨간 숫자를, 양봉 꿀 만큼이나 달달한 양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쾌재를 한 5초 정도 부른 것 같다. 딱 5초 정도.
근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세상에나 마상에나, 마음이 너무 아픈 게 아닌가.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그랬다. 우리집 꼬마들과 아침 먹을 때마다 난민이 되어버린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어떤 고생을 하는지 외국의 어린이 뉴스 채널을 통해 인터뷰를 보곤 했기 때문에, 또 지인의 부모님과 동생이 실제로 폴란드 국경을 넘어오기 위해 고생한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에, 나는 어쩐지 이 전쟁이 남의 일 같지 않고 슬펐다. 꼭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처럼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 나는 확신의 F가 맞다.)
내가 꼬마들 나오는 그 뉴스를 안 봤어야 했는데.......
그러다 1년 조금 안 되는 시간이 흘렀고, 똑똑한 친구와 카톡을 하다가 내가 누구를 손절했다고 하는 바람에 친구가 갑자기 주식 얘기를 꺼냈다.
- 도비 너 손절 잘해? 손절 잘하면 주식 해도 잘하겠다.
나더러 손절을 잘하냐고? 나는 익절도 못하는 똥멍청이다.
-나 손절 못해. 나 전쟁 나기 전에 록히드마틴 주식을 사 뒀거든. 근데 주식창이 새빨갛게 불타오르는데 팔지를 못하겠더라고. 마음이 너무 아파서.
전쟁 나자마자 철강이랑 곡물에 들어가서 얼른 먹고 나왔다는 똑똑한 그 친구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군수업체 주식을 사 둔 나를, 뭔가 나랑 안 어울리는 통찰력을 신기해하면서도 왜 그걸 안 팔고 있냐고 의아해했다. 자기 같았으면 당장 이익실현을 했겠다고 말이다.
그런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못 팔겠어, 인류애에 총상을 내는 것 같아서.
에휴… 진짜 저게 말인지 방구인지.
나도 안다,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많다는 사실을, 나도 그 다채로운 세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임을. (근데 거기에서 인류애와 멍청함을 담당하는.)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니 그 고생을 하면서도 이혼 결심을 하는 데에 그렇게나 오랜 세월과 긴 고민이 필요했나 보다.
이익 실현은 여전히 못한 똥멍청이지만 다행히 이혼에는 성공할 것 같다. (아직 진행 중이니 아마도 별일 없다면 말이다.) 전쟁이 끝나고 거품이 얼추 다 내려오면, 그때 주식도 인류애에 총상을 내지 않고 평화롭게 매도할 생각이다. 아무래도 나는 그렇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