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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Jan 05. 2023

브런치에서 피싱 메일이 왔다

어서 와, 새로운 제안은 처음이지?


캄캄한 고속도로 운전은 늘 긴장된다. 얼른 친정집에 도착하려고 200키로가 넘는 길을 열심히 운전하던 중 핸드폰에 푸시알림이 떴다. 브런치에서 메일이 오다니, 로켓배송처럼 왔던 작가 합격 소식 이후 처음이었다.


어맛, 나에게 새로운 제안이라니!


브런치가 먹는 그 브런치가 아닌 정도만 알고서 작가 신청을 한 뒤 축하 메일을 받고는 전에 써둔 브런치의 문법에 맞지도 않는 텍스트를 올렸던 9월 하순, 나는 토플이 뭔지도 모르면서 토플을 치겠다고 시험장에 간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12월 초가 되어서야 조금 여유가 생겨 브런치 글을 몇 개 읽기 시작하며 나는 브런치에는 브런치만의 문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에게는 없고 남들에게는 있는 초록색 카테고리 만드는 법을 검색한 끝에 매거진 만드는 법을 알아내어 전부터 쓰던 파일 이름을 딴 매거진도 만들었다. 이름하여 도비의 발칙한 이혼 일지.


매거진을 만든 지 채 한 달도 안 되었지만 거의 매일 글을 올리면서 그동안 다음 메인에도 글이 뜨기를 몇 차례. 그 덕에 잘 들어가지도 않던 다음에 자꾸 들어가  나는 다음이 사랑한 여자였어, 라며 농담도 했던 터라 브런치를 통해 왔다는 '새로운 제안'이 무엇일지 무척 기대되었고, 친정에 도착하자마자 힘차게 주차를 한 뒤 얼른 메일함부터 확인했다.


주차장에서 확인한 아름다운 장면.



한껏 부푼 풍선이 되려던 내 마음.

화면을 내리자 설렘은 순식간에 설레발이 되고 말았다. 

응? 피싱이었네?



피싱 얘기는 농담이다. 

정말 감사했고, 댓글을 남기셔도 될 텐데 메일을 보내시면서까지 “계속 쭉~~~ 지금처럼 걸어가실 것을 제안 드립니다!“ 라고 좋은 말을 해 주고 싶으셨던 이 분의 마음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한 뒤 내 메일 주소 노출을 감수하며 답장을 보냈다.




하루가 지나 답장이 왔다. 댓글 기능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고(꺄르르) 하신 것 외에도 정말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


.


나는 강태공 님의 두 번째 메일을 읽으며 선명하게 깨달았다. 이혼을 선택하면서, 심지어 어린이를 두 명이나 데리고 그 결정을 하느라 내가 정말 힘들었던 이유. 아이들에게서 아빠를 빼앗는 결정을 내린 나를 스스로 용서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지도 100% 자신은 없었다. 어떻게 포장을 하든 이혼은 결국 나 살자고 내린 결정이었으니까. 채 끝나지 않은 이혼은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오랫동안 낯설고 긴장되는 일일 테니까.


그러나 버티지 못해 결국 사라지기로 결정했다면 아이들은 엄마를 영원히 잃고 말았을 터. (없는 게 나은 엄마일까 나는.)


나는 <미움받을 용기>에서 아들러가 말했던 ‘불만이 가득한 현실 유지’ vs. ‘불안으로 가득한 해결책 마련’ 중 후자를 선택하는 정도의 용기 정도만 내면 되는 게 아니었다. 내 문제는 셰익스피어 작품 속 햄릿의 그 유명한 고뇌처럼 심각했고, 생과 사의 기로에서 나는 나를 살아가게 할 수 있는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었다던 누군가처럼 나도 살기 싫었지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좋은 결정이었다. 엄마 인내심 게이지가 작아져서 그게 참 미안하지만, 그래도 나 자신 참 대견하다.


강태공 님은 답장에서 이혼 후 삶의 여정을 간략히 서술한 뒤 혹 힘든 일이 생기면 본인을 테라피스트로 삼아도 된다시며 거주지와 모바일 연락처를 남겼고, 실명으로 편지글을 닫으셨다.


실명이라니!!! 한국인의 실명, 그 위화감 없는 석 자를 보며 지난가을 ‘남편의 아내로만 나를 알던 사람’과 어느 서점에서 우연히 만나 이밍아웃을 포함한 담소를 나눈 뒤의 낯설었던 떨림이 생각났다.


계산대 앞에 선 그가 뒤돌며 내게 물었다.

“And what is your name?”

마이 네임이라니. <삼포 가는 길>에서 점례라며 본명을 밝히던 백화의 마음이 이렇게 떨렸을까.

“김도비. 김 for 김밥, 도 for 도토리, 비 for 비둘기.”

내 이름을 물어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신을 만난 사람이라면 누구도 당신을 잊을 수 없을 거라고, 한국에 와 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내가 강태공 님에게 전화할 일이 있을까.

없으면 좋겠다. 생면부지 남에게 토로하고 싶을 정도로 슬픈 일 같은 건 이제 없으면 좋겠으니까. (하지만 이미 생기고 있다. 애미의 삶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분이 보낸 메일을 따로 저장해 두었다. 세상 사는 게 다 내 맘 같지는 않으니, 그리고 내가 받은 첫 브런치 제안 메일이니까. 덕분에 무엇을 용서해야 도비가 진정 자유가 될 수 있을지도 알게 되었으니까.


이혼할 용기도 낸 도비지만 강태공 님께 내 이름 석 자를 남기며 답장할 용기는 낼 수 없었다. 다만 나는 내가 받은 첫 브런치 제안 메일에서 지금처럼 쭉 걸어가라는 강태공 님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니 도비는 도비의 이름 석 자보다 더 가치 있는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 한 편의 글을 남김으로써 강태공 님의 메일에 대한 진짜 답장을 갈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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