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비 Jan 07. 2023

눈을 질끈 감고 이혼하는 중입니다

이왕 하는 이혼, 손을 꼭 잡고 하면 좋았겠지만.

어린 자녀가 있는 이혼 부부의 의무 절차인 상담을 받으러 갔던 날, 일대일 상담을 마치고서 다시 남편과 나를 한 자리에 부른 상담사 님은 이렇게 말했었다.


두 분의 이혼에서 저는 특별한 점을 봤어요.

온화했던 상담사 님의 그 말에 별안간 눈물이 뚝뚝 흘렀지만 옆에 앉은 남편이 몰랐으면 해서 닦지 않은 채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그랬구나, 허구한 날 이혼 부부 상담만 하는 상담사 선생님이 다른 부부들의 이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특별한 점을 우리 부부에게서 발견하셨구나.


특별한 게 무슨 다 소용일까, 그래봤자 이혼인 걸. 결국 나는 벅차도록 아프고 슬픈 이혼을 하는 중인 걸.





아주 친한, 그러니까 귀국 소식을 일 년 가까이 전하지 않고 있다가 대뜸 전화해도 나를 충분히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한 친구가 있다. 남편의 이혼 거절로 못 버티게 힘들었던 어느 날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나는 사실 한국에 들어왔고, 암 수술도 했고, 이혼도 너무 하고 싶다고 끄윽끄윽 울며 진상을 부렸더랬다. 내가 너한테는 이렇게 해도 되지 않니, 라는 말까지 당당하게 하면서 말이다. (친구가 "그럼, 해도 되지. 너는 내 목숨을 두 번이나 구했잖아." 하고 말했으니 우리는 친한 사이가 맞다.) 몇 년 전 남편의 아주 끔찍한 외도로 먼저 이혼을 경험한 그 친구에게 나는 이런 몹쓸 말도 했다.


"니가 이혼사유서 파일 보낸 걸 읽고 나는 너한테 일어난 일이 너무 슬펐어. 근데 사실 한편으로는 니가 부러웠어. 너한테는 상간소를 낼 수 있는 대상이 있어서, 위자료를 받아낼 수 있는 대상이 있어서 그게 부럽더라. 나는 남편의 학업을 상대로 상간녀 소송을 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 학업에게서는 아무 위자료도 받아낼 수 없으니까. 웃기지?“

“하나도 안 웃겨 야.”


친구가 이혼을 조금 극복해서 가능했던 발언이다. 자기 이혼을 두고 그런 말을 하는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을 만큼 많은 걸 공유한 사이여서.


싱글맘이 아니라 그냥 싱글이었으면, 나도 지금보다 조금은 덜 울면서 이혼할 수 있었을까. 내 머릿속이 꽃밭이 아니었다면 내 삶도 꽃길 옆에 가서 조금 서성여 볼 정도는 되었을까. 아이들과 아침저녁으로 박을 터트리며 양치해라, 숙제해라, 패드 그만 봐라, 싸우지 마라, 고래고래 잔소리를 할 때마다 현타가 세게 온다.


Crying is all right in its way while it lasts.
But you have to stop sooner or later,
and then you still have to decide what to do.  - C.S.Lewis, from <The Silver Chair>


브런치에 들어오면 뜨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이라는 문장의 주인이 나니아 연대기 중 <은의자>에서 쓴 말. 도비는 브런치가 인용한 문장보다 저 문장을 더 좋아한다.


울음이 나올 때 실컷 우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언젠가는 울음을 그치고서 이제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도비도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엉엉 우는 와중에도 초등교사 하는 친구, 보육교사 하는 친구들에게 한부모 가정 아이 맡았던 경험담도 물어보고 법적으로 한부모 가정이 되었을 때 이용 가능한 대출이라든가 상담이라든가 하는 제도를 알아봤다. 깜냥도 안 되면서 꾸역꾸역 참으면 병이 나기 마련이라는 것도 잘 아니까 아이들 키우기가 벅차면 벅찬 대로 아무도 안 볼 때 히잉 너무 서럽다고 울기도 하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괜찮아, 이혼 중인 걸. 이름에서 쓸데없이 조금 멋진 느낌을 풍기는 싱글맘이 되어 살기로 했는 걸.


채 끝나지도 않은 내 이혼은 어디로 나를 데려갈까. 내 이혼이 과연 우리 아이들은 어디로 데려갈까. 나도 언젠가는 어엿한 싱글맘이 되어 아이들을 척척 잘 키울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도 잘 커서 제 밥그릇은 알아서들 챙기는 어엿한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 무엇 하나 알 수 없어 나는 오늘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고 눈물을 그친다.


손을 꼭 잡고 이혼한들, 눈을 질끈 감고 이혼한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이혼이란 게 존재할까. 개도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데 이혼도 세상에 안 아픈 이혼은 없는 법이다.(응???) 그러니 도비는 뭇 사람들에게처럼 내게도 너무 슬픈 이 이혼이 얼른 지나가기를 기다려 본다. 부디 이혼이 잘 지나가서 곱고도 슬픈 남의 이혼 얘기를 정주행 하며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코너 속의 코너, <도비와 함께 노래를>

도비가 옛날부터 즐겨 들어서 둘째도 아기 때부터 곧잘 부르는 노래. 한숨이 나올 때 들으면 슬픔을 조금 덜어낼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에서 피싱 메일이 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