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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Jan 01. 2023

남편을 변호합니다

나의 말하지 않는 비밀


12월에 매거진을 만들어 글을 발행하기 시작하면서 도비에게도 여느 초심자들에게 온다는 행운이 왔다. 바로 다음 메인 노출. 매거진을 만들자마자 갑자기 조회수가 늘어나서 이 나이 먹도록 블로그 한 번 해 본 적 없는 도비는 조금 쫄고 말았다. 가장 사적인 마음이 가장 공적인 공간에 나가니 참 긴장되었다. 메인에 글이 올라가면 조마조마하기도 했고, 가끔 너무 크게 공감해 주는 바람에 남편 욕을 하는 분이 있으면 어쩐지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발칙한 것도 아무나 못 하는 거구나, 세상엔 참 쉽지 않은 일이 많구나.


그래서인지 문득 2021년 봄에 썼던 글이 생각났다. 이 글을 꺼낼 일이 있을까, 그런 날이 올까, 당시 글을 쓰면서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꼴랑 두 문단 쓰고서는 <말하지 않는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저장한 글이었다. 남편을 변호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는 걸 도비는 알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그때 글을 썼던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니 도비가 곧잘 하는 앓는 소리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슬퍼서 써 놓고 가만히 묻어 두었던 글을 조심스레 꺼내 본다.




<Incidents in the Life of a Slave Girl: Written by Herself>는 19세기말 미국에서 여성이고 흑인인데다 심지어 노예였던 저자가 ‘Linda Brent’라는 가명으로 쓴 자서전이다. 불행의 삼 박자를 모두 갖춘 저자는 노예제도 하에서 백인 남성에게 받은 성적 착취와 속박당한 모성, 그리고 도주를 위한 분투 과정을 책 속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당시 남성의 주도하에 이뤄진 노예해방운동이 놓치고 있었던 "여성" 노예의 고통을 폭로했고, 그로 인해 노예해방운동에 관심이 적었던 백인 여성들의 공감을 크게 이끌어낸 의의가 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텍스트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다. 바로 ‘말하지 않는 것’에도 주목하는 눈.


주인 집에서 도주한 후 할머니 집 현관 지붕 아래의 작은 다락에서, 빛도 없고 팔다리를 움직일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7년이나 숨어 지낸 저자는 자신이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한 이유가 모성애 때문이었다고 서술한다. 그리고 그 7년 동안 저자가 배변이나 생리 같은 현상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로부터 독자는 완전히 소외된다. 글의 목적과 상관없는 일을 저자는 굳이 쓸 필요가 없었으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다. 십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남편과 좋은 시간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귀찮은 면이 있지만 제법 귀여운 꼬마를 둘이나 낳았고, 좋은 기억도 많이 있다. 다만 아마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오랜 세월 퇴적된 설움의 해소이기 때문에 나는 필연적으로 내가 겪어온 슬픔과 외로움, 부당함에 서술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독자의 한쪽 눈을 내 슬픔과 설움으로 향하게 하는 동시에 그들의 다른 한 눈이 내 예민함과 잘못을 보지 못하도록 가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이 우리네 인생에 가능할 리 없지 않은가. 나도 힘들었던 상황을 핑계 대며 좋지 않은 말과 행동을 했고,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순간도 셀 수 없이 많다.


글을 읽으신 분들이 공감해 주시는 건 정말 감사하다. 하지만 내 글에 드러난 파편적 묘사가 남편과 시댁의 전체인 듯 읽지는 않으셨으면 한다. 코끼리의 상아만 만지고서 창이라고 생각한 맹인이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없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글을 쓰며 비로소 참된 해방과 자유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 도비는 정말 자유롭고 싶으니까.

                    



이 발칙한 이혼 일지는 브런치북 <나의 발칙한 이혼 일지 2>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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