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가 된 지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책, 신문, 그리고 아주 가끔 태우는 담배는 아날로그로 즐긴다. 몇 번이고 디지털화해 보려 노력하지만 아날로그가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이다.
아날로그로 남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는 손으로 쓴 편지도 있다. 일본에는 아직도 연말연시에 연하장을 돌리는 문화가 남아있다. 와이프에게 오는 연하장을 보면 구닥다리라 전통이라 하면서도 내심 부러울 때가 있다. 연하장에 단 몇 줄, 형식적인 말들을 적는 짧은 시간만이라도 그 말을 받아 볼 누군가를 가만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며칠을 돌고 돌아 우체통에 도착한 그 몇 줄을 받아 보는 사람 또한 단 몇 줄을 읽는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그 글을 쓴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지지 않을까. 가끔 나도 친구들끼리 엽서도 쓰고 편지도 보내며 서로에게 간지러운 말들을 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하지만 그랬다가는 당장에 그들의 카톡방에서 내 이름이 지워질 것이다.
매일 아침 종이 신문을 읽는 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정보의 신속성이야 인터넷 신문만 하겠냐마는 나는 그 겹겹의 종이를 넘기는 느낌이 좋다. 널찍한 신문지는 촤-악하고 파도 소리인지 바람 소리인지 모를 시원한 소리를 내며 넘어간다. 책 한 권 분량은 될 법한 하루치 신문의 지면을 글과 사진으로 채운 누군가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문이란 흔한 물건 취급을 받는다. 휙 내팽개쳐 버려져도 내일 아침이면 새 신문이 잘 접혀서 우편함으로 들어온다.
흔한 것은 편한 것이다. 색연필로 마음대로 줄을 긋고 마음에 드는 글이 있다면 주저 없이 주욱 찢어 책 사이에 넣어 둘 수도 있다. 하지만 편한 것이라고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아침 매일 보이던 자리에 신문이 도착하지 않았을 때의 그 허전함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사흘이 멀다 않고 구박하던 할매가 집을 나갔을 때의 할배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여보 내가 세상 어디서 당신만큼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말이오. (있을 때 잘하시오!)
요즘은 아침 시간이 바빠진 탓에 신문을 더욱 건성건성 읽게 되었다. 눈에 들어오는 제목만 동그라미를 치며 채점하듯 지나가기도 하고 좀 자세히 읽어야겠다는 기사는 오려 놓고 주말에 들여다본다. 하지만 그중에 매일 빠지지 않고 꼼꼼히 읽고, 심지어 사진을 찍어 와이프와 친구들에게 보내어 주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오늘의 운세>이다. 운세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는 누구나 나는 사실 운명이란 것을 그다지 믿지 않지만..라고 자기변호를 시작한다. 나? 나도 그렇다. 나도 그다지 지면에 실린 운세를 믿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나는 꼬박꼬박 나와 와이프의 운세를 체크하고 사진을 찍어 보낸다.
연과 띠를 붙여 놓은 <오늘의 운세>가 맞는다면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 중에 띠가 같은 12분의 1의 사람이 비슷한 운세로 하루를 산다는 계산이다. 그럴 리가 있느냐 하겠지만 놀랍게도 이 짧은 운세가 잘 맞는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굳이 이들의 신비로움에 초를 치자면, 그것은 뇌가 가지고 있는 대단한 연상 능력 때문이다. 일초에 수백 가지 생각을 하는 우리 뇌는 하루 중에 일어나는 어떤 일도 그날의 운세와 엮어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오늘의 색깔이 빨강이라는 말을 믿는다면 그 사람 눈에는 하루종일 빨강만 눈에 들어오고 그날 벌어진 일들은 모두 빨강에 연관된 일이 될 터이다. 그렇게 똑똑한 나는 그럼 왜 매일 그것을 보고 사진까지 찍어 뿌리느냐고? 하나, 재미있기 때문이다. 둘, 좋은 내용은 희망과 기대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기 때문이다. 셋, 나쁜 내용이라면 조심하여 나쁠 것이 없다.
오늘 아침, 신문을 펼쳐 <오늘의 운세>, 토끼띠에 동그라미를 쳤다. 믿는 도끼에 발 등 안 찍히게. 오 섬뜩한 운세이구먼. 어떤 놈이 내 발등을 찍으려나, 오늘은 조심조심 지내야겠어. 그리고 한 시간도 안지나 나는 내가 제일 믿는 놈, 나 자신에게 배신을 당했다. 핸드폰으로 습관적으로 하는 송금을 하며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은 채 거액의 돈을 엉뚱한 계좌로 보내버린 것이다. 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수습하느라 반나절을 꼬박 은행에 붙어 있어야 했다. <오늘의 운세>가 경고를 했었건만! 더 조심해야 했는데 나는 스스로에게 발등을 찍혀 이 고생을 한다. 인간아, 아 인간아. 까불지 말고 운세의 말씀을 잘 들었어야 하는 데.. 오늘 <오늘의 운세> 앞에 오만했던 나를 반성한다. 어른들 말씀을 잘 들으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도 못하겠으면 아침마다 <오늘의 운세>를 잘 살피고 만사에 조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