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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Sep 26. 2024

광저우 행사를 마치고 #중국바이어들에 대한 단상

20240926 광저우 중국

광저우에 행사를 마쳤다. 농수산식품의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이 행사는 중국 전역에서 한국 식품을 취급하는 수입사를 초청하여 미리 선정된 한국회사와 상담을 주선하는 자리였다.


45개의 식품 업체가 참가했다. 넓은 이틀간의 행사는 행사장에 마련된 각자의 부스 앞에는 자사의 제품들이 전시되고 미리 정해진 상담 시간에 맞추어 바이어들이 부스를 방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우리 회사는 작년 11월 브랜드를 론칭하고 첫 제품을 내어놓았다. 행사에 참가한 다른 업체들의 업력을 생각하면 안녕하세요 저희는 새로 들어온 루키(신입)들입니다.라고 인사라도 하고 싶지만 나의 업력은 그리 만만치 않다. (만만치 않은 나이이다.)


중국의 불경기와 함께 여러 정치적인 이슈들이 겹치며 한국 제품의 중국 수출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생산 원가가 상승하여 제품의 가격이 상승한 반면, 중국은 불경기로 소비재의 지속적인 가격 인하가 진행되었다. 수출 가격의 인하 압박은 한국 제조사들에게 중국 사업의 사업성을 희석시켰고 중국 업체들은 높은 수입원가 때문에 한국 제품에서 손을 떼고 있다.


수출을 하는 쪽도 수입을 하는 쪽도 모두 어려운 상황이 몇 년간 지속되자 한국 식품을 취급하는 업체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뽀로로 음료와 바나나 우유, 신라면, 불닭면 등 이제 중국 시장에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중국에 뿌리를 내린 몇몇 브랜드와 제품만 살아남았있다. 떠날 사람들은 모두 떠나니 시장에는 매우 가성비 좋은 제품만 남았고, 가장 효율적인 비용으로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전달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유통사들만 살아남았다. 가뭄이 오래되면 둥지가 굵은 실한 나무들만 살아남듯, 알짜와 강자들만 살아남아 버티고 있다.


한국 식품을 수입, 유통하는 회사들은 주로 연변과 연길 출신의 조선족들이 세운 회사이다. 이들은 초창기부터 한국 업체와 원활한 교류가 가능한 장점을 활용하여 한국 식품을 수입하였고 시장이 한국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며 유통 시장을 빠르게 점유했다. 시간이 흐르고 한국인이 중국에서 세운 수입 유통사가 하나둘씩 생겨났다. 이들은 한국을 쉽게 오가며 다양한 제품을 소싱하거나 제조사와의 교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내국인(한국인)으로서 외국(중국) 회사에 비하여 높은 신용도를 얻는 이점이 있다.


미팅은 40분 정도로, 10분 간격을 두고 이어졌다. 중국 시장을 담당하고 있는 김사장이 미팅을 주도하였고 나는 한국 본사 사장으로서 간혹 추임새를 넣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표정이나 말투를 가만히 관찰할 수 있었다. 다음은 내가 중국의 유수의 수입 유통사들과 미팅하며 그들에게 느낀 점들이다.


1.         동종의 업계 즉 수입 유통사 사이에 교유와 정보교환이 존재한다.

행사에 참가한 여러 수입, 유통사들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이들끼리 서로 잘 알고 지낸다는 점이다. 동종업종 간이니 경쟁이 치열할 텐데 막상 회사들의 바이어와 MD끼리는 잘 알고 지냈고 서로 많은 정보를 교류했다. 처음 만나는 바이어들도 우리 회사가 최근 중국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지도 잘 알고 있었는 데 이는 그만큼 이들 사이의 정보 교류가 신속하고 원활하다는 말이다.

경쟁사 간의 정보가 원활한 데는 중국의 시장 유통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 중국에서는 대게 한 회사가 제품을 수입하면 그 제품을 다른 회사가 받아서 각 지역에 유통을 시킨다. 중국은 영토가 워낙 넓고 시장이 다양하니 한 회사가 모든 지역에 유통하거나 모든 채널에서 제품을 유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제품을 넓은 지역에 또 빠지는 유통. 채널이 없이 꼼꼼하게 입점시키려면 서로 간의 협력이 필요하고 이런 협력 관계의 기본은 상호 간의 인적 교류에 바탕을 둔다.  


2.         오래된 회사가 살아남는다.

어느 영역이나 마찬가지로 오래된 놈들이 더 잘한다.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겪으며 노하우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중국의 수입상들을 보면 오래전부터 해오던 업체가 주류를 이룬다. 물론 그 사이 크고 작은 업체들이 흥망성쇠를 겪고 사라지기도 하였지만 남아 있는 대부분의 수입사들은 한 가지 카테고리, 한국 식품이라는 특색을 가지고 회사를 유지해 왔다

업력이 오래될수록 평판도 쌓여간다. 이 업체는 음료나 스낵 등 한 카테고리를 잘하는 업체다, 저 업체는 대형마켓 혹은 편의점 등 어떤 유통 채널에서 강자이고, 그 업체는 동북지방 혹은 절강성 등 어떤 지역에서 방귀 좀 뀐다는 등, 시간이 흐르며 자기만의 나와바리(영역)가 자연스럽게 시장에 알려지게 된다. 당연히 게 중에는 나쁜 놈이라고 불리는 업체도 등장한다. 수입한 물건을 싸게 시장에 풀어 가격대를 무너뜨리거나 짝퉁을 만들어 남의 브랜드를 망가뜨리는 회사들이다. 빌런은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아니 건재한다.


3.         신생 회사들은 명확하게 자신의 채널과 제품에 집중한다.

수년 전에 비하여 획기적으로 늘어난 수입사는 중국에 사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업체들이다. 업력이 10년 이내의 신생 업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수년 사이 빠르게 성장하였다. 중국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던 시기에는 눈앞에 어떤 기회가 오는 가가 가장 중요했다. 그 기회가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그것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중국의 시장이 빠르게 성숙기로 접어드는, 아니 어쩌면 빠르게 쇠퇴해 가고 있는 시점에는 시장의 구조를 잘 분석하고 그중에 비어있는 공간을 공략하는 것이 성패를 가른다.

30대와 40대 초반의 젊은 사장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이들은 중국에 유학을 왔다가, 어떤 이들은 지사에 파견을 나왔다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경우였다. 어떤 이는 매출이 수백억, 어떤 사장은 자사의 매출이 2000억을 넘어선다고 말했다. 이들은 최근의 불경기에 많은 한국으로 돌아간 많은 사람들의 역할을 메우며 성장한 부분도 있지만 분명 명확하게 자기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과감한 투자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은 대형 유통 채널에서 필요한 것, 트렌드에 맞는 한국 제품들을 제조사로부터 직접 소싱하여 공급하였고 가격을 낮추기 위하여 PB(자체브랜드) 상품 출시를 제안했다.


4.         사람들이 선하다.  

지극히 작은 관찰 집단에서 느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 행사에 모인 중국의 유통상들은 하나같이 좋은 인상에 차분한 몸가짐을 지니고 있었다. 조금 과장한다면 좋은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행사에 모인 회사들의 규모가 작지 않은 이유로 여유에서 나오는, 특히 바이어로서의 우월적인(?) 입장에서 나오는 분위기일 수 도 있겠지만,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사람들과의 원활한 교류가 필수적인 중국의 유통업계에서는 인품이 중요한 능력이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한국인 수입상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모두 10여 년 이 넘게 중국에서 혹은 중국과 연관된 사업을 하고 있는 고수들이다. 이들은 다들 중국에서 사업을 하며 겪었던 재미있거나 황당했던 에피소드들을 한 보따리씩 차고 다닌다. 장사 이야기는 항상 재미나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비가 그치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구름이 걷힌 광주탑은 꼭대기 송신탑을 드러내고 탑 전체에서 벌건 빛을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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