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광화문 교보빌딩 다산홀에서 열린 이정모 전국립과학관 관장의 강의를 들었다. 그는 막 은퇴를 하여 이제는 작가로 불린다. 그는 진행자의 소개를 받고 공룡이 그려진, 사실은 공룡의 머리뼈가 그려진 티셔츠에 베이지 면바지를 입고 무대로 올랐다. 그의 얼굴은 털보 관장이란 별명에 어울리게 수염이 덥수룩했다. 초등학생 아이들도 많이 참석했다. 그의 만화 속에 나오는 박사님과 같은 외모도 그가 초등학생들 사이에 인기를 끄는 큰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질투하는 것은 아니다.
<찬란한 멸종>이란 책이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런 생각은 심형래 감독의 <우뢰메>를 보며 과학을 접하던 나의 세대의 생각일 것이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시키는 선행학습의 수준도 대단하다지만 실은 요즘은 어린아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첨단의 과학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이들을 위해 매우 쉬운 말로 내용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터들이 핸드폰 안에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이정모 작가의 강의는 재미있고 유익했다. 그가 스스로를 말하듯 아시아 최고의 자연사 박물관장이라 할 수 있는 이유는 재미와 의미 그 두 가지를 모두 전달하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재미만 있으면 허무하다. 긴 시간 웃고 스트레스가 해소는 되었겠지만 남는 것이 없으니 허무하다. 배우는 것이 많지만 재미가 없으면 대부분은 도중에 잠이 든다. 그러니 역시 피로는 풀겠지만 남는 것이 없다. 학교의 선생님들이 혹은 무엇을 가르치는 강사들이 진지하고 충실한 강의를 준비하며 정작 전달에 실패하는 이유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선생이 학생에게 음식은 떠먹여 주기까지 해야 하냐고? 뭐 그러면 좋겠지만 그 정도까지 열성적이지 않다면 최소한 음식을 먹고 싶도록 맛있게 보이게는 만들어 주어야 한다.
작가를 강의는 지구가 처한 지금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그 해결책을 결국 지난 지구의 역사, 자연사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는 모두 지나간 기록이며 망한 국가들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그 망한 국가들의 기록을 살피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망했는 가를 보고 우리는 그러한 우를 범하지 않으려는 반면교사로 삼기 위함이다. 지구의 온도는 서서히 오르고 내리는 일을 반복했지만 지금처럼 급속도로 뜨거워진 때는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 수십 년 전의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를 우려하며 500년 600년 후에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지만 지금의 과학자들은 빠르게는 150년 정도만 지나도 지구는 인간이 살기 힘든 별이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지구의 현실을 보며 작고한 대과학자 스티브호킹 박사는 화성으로 이주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최근 일론머스크가 본격적인 화성이주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화성으로 가기 위한 비행체의 개발을 어느 정도 진전시키고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모래 폭풍이 불며 인류가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되어버린 지구를 대체할 또 다른 행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새로운 별에 이주하여 그 별을 지구화시키는 것을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 한다. 이정모 작가는 그 또한 과학자로서 이러한 타 행성으로의 이주하거나 지구화하려는 계획을 강력하게 부정한다. 우선 그렇게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에 쓰일 자본과 기술이라면 우리의 고향 지구를 유지시키는 데 쓰여야 하고 충분히 지구를 살만한 곳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나 역시 그의 생각에 동감한다. 떠나려는 노력은 지키려는 노력을 분산시킨다.
작가는 과학자로서 우리 앞에 놓인 '절망적'인 현실을 직시하지만 또한 과학자로서의 인류의 의지와 극복에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다. 세상이 너무 많이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너무 겁먹지 말기를,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믿으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작은 실천들을 강조한다. 그 실천이란 우리가 변화하고 우리의 변화가 지구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렇게 작은 일이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지만 작지만 분명 그만큼의 역할을 한다. 변화란 그 작은 역할들이 모인 결과이다.
이정모 작가는 지구를 위한 자신의 작은 실천을 이야기하였다. 첫째 옷을 사지 않는다. 옷을 만드는 것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의 10%나 차지하기 때문이다. 계절이 바뀌면 의례 새옷을 사서 옷장 안에 쑤셔넣는 오랜 관습을 멈출 때이다. 둘째,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는 자동차를 타지 않는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나 또한 서울에 살며 몇 년째 차를 몰지 않지만 차를 운전하고 이동할 때 보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편리함을 느낀다. 굳이 많이 걸어 건강에 좋다는 이유를 데지 않아도 수도권에는 충분히 편리한 교통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다. 세 번째,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소는 우리가 식용으로 기르는 가축 중 가장 효율이 낮은 가축이다. 단백질 1kg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땅의 면적은 닭의 12배에 돼지의 3배에 이르며, 발생되는 온실가스는 닭의 8배, 되지의 6배이다. 비싸서 못 먹는 소를 계속 드시지 않아도 좋은 이유라지만 나는 어젯밤에도 한우를 먹으며 참 맛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맛을 돼지고기에게 살짝 양보하는 것이 환경에는 현격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우리말에 알고는 못할 짓이라는 말이 있는 데, 소고기를 먹는 것이 그런 일이 될 줄이야.
이정모 작가의 강의가 끝나자 긴 박수가 이어졌다. 아이들은 환호를 질렀다. 어른들과 함께 아이들도 그의 생각에 공감하고 있다. 우리는 굳어져버린 입맛으로 여전히 소고기를 갈구하겠지만 저 아이들이 있기에 언젠가 인류는 이 위기를 이겨내고 지구를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