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간의 대화가 귀해지는 시대에
"눈에 힘 빼라. 무장해재해라! 그러고 다니다가 큰일 난다"
- 김훈, <허송세월> 중에서
나는 요즘 부드럽게 말하기, 더욱 친절하게 말하기를 연습하고 있다.
우리가 사람들과 마주하고 대화를 할 때 전달되는 메시지의 대부분은 말의 내용과 무관한 비언어적인 요소로 전달된다고 한다. 그중에 표정이나 몸짓 등 시각적인 요소가 55%, 목소리나 억양 등의 청각적 요소가 38%를 차지하고, 정작 말의 내용은 전달되는 전체적인 의미의 7%에 그친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대화 중의 비언어적인 요소인 말투와 태도에 특별히 민감하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다.
비언어적인 요소들에 민감하다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활자화될 수 있는 내용 이외의 정보들에 대하여 나름대로 다양한 해석을 내리고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네 그렇군요'란 짧은 한마디도 말하는 상황과 말하는 사람의 말투, 태도에 따라서 어떤 때는 '네, 말씀하시는 내용을 잘 듣고 이해하였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로 해석되는 가하면, 어떤 경우에는 '네,네, 당신 말씀은 잘 알겠고요, 나는 대체 동의할 수 없습니다.'로 들리기도 한다.
요즘에는 가게에서는 키오스크를, 사무적인 대화는 문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대화 방식으로 우리는 정서적인 부담과 해석의 교란을 피할 수 있다. 오해를 부르고 애매한 해석을 낳는 비언어적 의미전달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주문을 받는 키오스크 기계에게 손님이 갑질을 하였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카카오톡을 하며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나 눈빛을 읽어 낼 수 있는가?
아직도 많은 대화가 직접적 대면 혹은 전화 통화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술이 발달할수록 조만간 거의 모든 대화는 AI 혹은 문자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인간 대 기계의 대화의 시대가 오면 우리는 그동안 인간 대 인간의 대화에서 많은 갈등과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모든 비언어적 의미를 배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우리는 그리워하리라.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진짜 인간의 목소리, 카운터 앞에서 웃어주던 나와 같은 인간의 미소, 말실수, 기침, 딸꾹질, 트림, 방귀... 그리고 이외의 모든 인간적인 모습들을.
그래서 나는 결심하였다. 모든 타인과의 만남과 그들과의 대화를 소중하게 여기기로. 상대가 누구이든 나와 대화하며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내가 타인의 태도에 예민한 것만큼 상대방도 나의 태도에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더 나아가 최대한 부드럽고 친절한 말투로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 주자. 그런 말투와 태도가 몸에 베이도록 연습하자. 친절이라는 것은 돈이 들지 않고 타인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지만 기계들이 대답하는 시대가 오면 그 미덕도 무의미해질 것이니. 이렇게 공짜로 타인에게 덕을 베풀 수 있는 날들도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타인과의 만남과 대화가 점차 희귀해지고 소중해지고 있는 시대이다. 인간이여 인간들에게 친절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