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호 Oct 31. 2024

일일신 우일신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시의 적절하게 들을 수 있는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벌써 11월이라니...라고 말하지만 시간의 속도는 우리의 관념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벌써 혹은 아직도라고 느끼는 시간의 속도감과는 무관하게 시간은 천천히도 빨리도 흐르지 않는다. 그저 무심히 흐를 뿐이다. 다만 기억할 일이다. 바로 오늘이 우리 인생에 가장 젊은 하루라는 것을.


유난히 길고 더웠던 여름이었다. 몇 주 전부터 날씨는 급전직하하여 빠르게 가을로 들어섰다. 게으른 나는 오늘 아침도 문을 나서며, 빨리 겨울 옷들을 꺼내 놓아야 하는 데라고 생각하며 얇은 옷 사이로 스미는 한기를 몸으로 들였다. 게으름의 대가이다. 팔짱을 끼고 종종걸음으로 걷다 횡단보도 앞에 서니 길가에 심어진 높다란 은행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높은 나무에 빼곡히 달린 은행잎들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였을 때가 엊그제 같은 데, 이제는 모두 색이 바래고 게으른 초록 잎들이 듬성듬성 남아 달렸다. 누런 잎들이 지고 나면 나무는 이내 앙상한 가지들을 드러내리라.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구일신 일일신 우일신)
진실로 새롭게 하려거든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이 하라
- 탕지반명(湯之盤銘), 《대학(大學)》 2장 중에서

탕왕의 욕조에 세겨져 있었다는 문구를 떠올린다. 그 오랜 옛날, 왕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무엇이 그리도 새롭기를 원하였던 걸까.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기에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안다. 어제를, 방금을 기억하기에 시간이 흘렀다고 알고, 1년 전. 2년 전, 10년 전의 기억이 있기에 묵직한 나이를 실감한다. 우리가 그토록 탄탄하게 믿고 있는 우리의 나이도, 기억도 실상 지금의 우리가 떠올린 과거의 형상일 뿐이다. 그러니 얼마나 긴 시간을 살아왔던 우리가 가진 것은 바로 지금 뿐이다.


우리는 지금의 우리로만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살아온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는 촘촘히 이어지는 우리의 기억 속에 '나'라는 연장 선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것은 지금의 나뿐이지만 지금의 나란 내가 살아온 모든 과거의 총합인 이유이다.


그러니 우리가 시간과 나이를 언급하며 쉬이 했던 말들을 따져보자. 우리의 과거가 그저 기억에만 존재하는 과거라면 그 과거의 길이를 나타내는 나이도 단지 머릿속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틀림이 없다. 잠시 기쁘겠지만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지금의 우리에게 과거로부터의 면죄부를 발급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의 총합이자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살아온 바에 따라 지금의 나의 상황이 결정되었음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새롭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여전히 과거의 연장선에 서 있는 데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다는 말인가?


새롭다는 것은 지난 것과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삶이 새롭다는 것은 그동안 살아왔던 방향과 습관과 다르게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가 알던 나와 다른 새로운 자아를 만드는 일이리라.


나의 성격과 습관은 과거로부터 내가 살아온 연속된 기억이다.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이전의 습관과 성격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과거로부터의 연속성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우리의 과거는 오직 기억으로만 존재하고 나의 습관과 성격이 단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이어주는 기억 속 규정이라면, 우리는 이 규정을 뒤집는 마음먹음 하나만으로 새로운 나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변화를 막는 여느 물리적인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오늘까지의 내가 어찌 살았든, 어떤 인간으로 살아왔던 앞으로 나는 어떤 나로 살아겠다는 스스로의 결심이 선다면 그러한 새로운 나에게 어울리는 행동을 하려는 확고한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새로운 자아로 거듭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탕왕은 매일 아침저녁 욕조에 새겨진 글귀를 보며 되새기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로 몸을 씻어 내듯 과거의 자신에서 벗어나 매일 새로운 인간, 더 나은 인간이 되려 했던 것이 아닐까. 매 순간 새로운 자아로, 더 나은 자아로 거듭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이 가을 나도 바라여 본다. 새롭자. 새롭자. 나날이 새롭자, 더 나은 인간으로 거듭나자.   

매거진의 이전글 보다 친절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