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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Nov 01. 2024

김춘수 <강우>

전시장에서 만난 옛 동료의 모친상

일산에서 열린 전시회의 이틀 째 되는 날이다. 늦은 오후 옆 부스에서 캠핑용 종이 냄비에 라볶이를 가득 끓여 주었다. 밀려드는 손님들로 부실하게 점심을 때워 출출하던 차에 감사한 일이다. 라면 사리를 종이컵에 담아 후루룩 입에 넣으려는 찰나, 부스 앞에 나를 찾아온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입에 가져가려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서둘러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이전 직장의 동료였던 그녀는 어엿한 회사의 대표가 되어 대한민국 식품 수출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몇 달 전 그녀에게는 큰 아픔이 있었다. 오랜 시간 지병을 앓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어머니의 투병 생활을 이야기했고 자주 눈물을 훔쳤다. 길고 힘들었을 시간이 짧은 이야기로 흐르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장 힘든 것은 아버지라고, 집에 들어 서도 엄마 생각, 소파에 앉아도 엄마 생각, 엄마랑 같이 보던 동물 농장도 이제 엄마 생각에 힘들어 보지 못하신다고. 


누구도 타인의 아픔을 대신하거나 나누어 가질 수 없다. 우리는 그저 타인의 아픔을 짐작하고 공감하려 노력하고 우리의 위로가 그 슬픔을 아주 조금이나마 덜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오십여 년을 함께 했던 반려와 헤어진 슬픔은, 허전함은, 외로움은 당신 자신이 아닌 누구도 쉬이 짐작치 못할 일이다. 자식들 또한 그러하리라.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만 쳐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 뼘 두 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강우(降雨) / 김춘수 (전문)



그녀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한참 동안 그녀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헤어짐이란 슬프고 두려운 일이지만 한편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저 머릿속 생각일 뿐이다. 떠난 이의 부재가 익숙해지려면 함께 했던 시간만큼, 나누었던 감정의 깊이만큼의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일테다.


부재를 아파하는 동안 우리는 항상 이별 속에 있다. 언젠가 부재를 받아들이고 기쁘게 추억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비로소 우리는 떠난 이들과 함께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녀가 아픔을 딛고 더욱 더 건승하기를 기원한다.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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