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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Nov 02. 2024

동창회 가는 길

졸업 30주년 행사를 가는 귀찮음과 망설임

일산 전시장에서 3일간의 전시를 마쳤다. 돌아오는 길은 금요일 저녁 서울로 들어오는 차들로 거북이걸음이다. 전시가 끝나면 보통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홀가분한데, 오늘은 영 그렇지 못하다. 오늘 저녁 큰 행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집에 가서 뻗어버리고 싶은 데 그럴 수가 없다.


사무실에 짐을 내리고 집에 돌아와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30년 만에 만나는 고등학교 동기들에게 땀에 절은 모습으로 나타날 수는 노릇이다. 몇 달 전부터 동문회가 들썩들썩하고 매우 오랜만에 동기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하더니 한강변의  웨딩홀에서 졸업 30주년 행사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 학년은 20개 반에 1000명이 넘는 동기가 있으니 장소도 아주 널따란 곳을 잡았다.


나는 좀 망설였다. 요즘 나는 그간 자주 만나던 친구도 만나지 않고 나의 생활을 극도로 단순화하였다. 새벽 운동, 사무실 출근, 점심은 샐러드, 퇴근 후에는 집에 들어와 간단히 저녁을 때우며 잠들기 전까지 글을 쓰다가 잠드는 일과이다. 처음에는 무척 심심하던 이 단조로운 일과도 이제 꽤나 익숙해졌다. 패턴을 지키며 하루하루 마음이 편하게 지내는 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 참가하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내가 요즘 술을 마시지 않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남자 고등학교의 동문회 문화란 술을 마시지 않고는 대체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이다. 누구누구가 의견이 달라 분위기가 썰렁해질 때면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누군가 건배! 하고 외친다. 그러면 모두가 잔을 들어 건배! 하며 잔을 부딪히며 이야기는 다른 주제로 흐르고 분위기는 다시 화기애애해진다. 30년이나 만나지 않던 같은 반 친구도 아하! 그래그래 하며 잔을 부딪히며 우리는 친구다! 가 되게 하는 것도 모두 술의 힘이다. 그런 면에서 술이란 대화의 윤활유이자 관계의 접착제임이 분명하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아무래도 분위기가 겉돌게 된다.


이런저런 변명을 둘러대어도, 사실 내가 졸업 30주면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나의 성격 탓일지 모른다. 나는 친구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최근 스스로를 지나치리만큼 정돈된 일과에 가두어 두니 자연스럽게 일상의 패턴을 깨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부담스러워진 것이 아닐까. 이를 증거 하듯 최근에 다시 해 본 MBTI 테스트에서 이전에 E(외향)의 성향이 I(내성)로 바뀌었다.


나는 용기를 냈다. 내가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만날지 알고 싶었다. 조금 설레었지만 여전히 피곤하고 귀찮고 후회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택시를 탔다. 강변을 끼고 택시가 달린다. 이제 거의 다 왔다. 행사장이 보이고 발코니에 몸을 기대고 한강을 내려다보는 아저씨들이 보인다. 나의 동기들이다. 나는 알고 있다. 저들과 만나는 순간 나의 귀찮음과 망설임은 사라지고 저들과 함께 뛰고 떠들던 30년 전 그때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이상하리만치 또렿이 기억하고 있는 교가를 흥얼거리며 택시에서 내렸다. 어이! 하며 누군가 나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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