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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Nov 05. 2024

비둘기의 기도

청소부로 위장한 신의 메신저

신이시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우리에게 모멸에 찬 눈빛을 던지고 지나가는 인간들을 용서하소서. 자기의 힘으로 하루의 양식을 벌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들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 단단한 콘크리트를 부리로 쪼아대는 우리를 업신여기옵니다. 그들이 우리를 혐오할 때 우리는 제 손으로 밥을 구하지 못하는 무능한 인간들의 손을 보았습니다. 노동의 존엄을 잊고 다른 이들의 땀에 기대어 사는 저들을 용서하소서. 


신이시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우리가 날아오를 때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던 인간들을 용서하소서. 인간들이 방주에 의지하여 망망대해를 헤맬 때 우리는 나뭇가지를 물어주어 그들이 희망으로 살게 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선지자가 세례를 받을 때 그 위에 날아와 축복을 해주었던 것도 바로 우리 옵니다. 어느 때는 신의 메신저로, 평화의 상징으로 우리를 떠 받들던 저들이 이제 우리에게 물 한 모금 내어주지 않고 더럽다며 피합니다. 과거의 은혜를 잊고 매정하게 우리를 내치는 저들을 용서하소서. 


신이시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기다란 빗자루로 우리를 휘갈기고 발길질하는 저들의 포악함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들에게 죄가 되는 일이 다른 이에게도 죄가 됨을 모르옵니다. 우리는 저들에게 해를 가한 적이 없습니다. 가끔 전깃줄 위에서 싸지른 똥이 그들의 머리에 떨어진 적은 있지만 맹세컨대 일말의 악의가 없었나이다. 우리의 배설물이 바닥에 떨어진다고 우리를 몰아내려 하다면 온 지구를 똥통으로 만들어 버린 인간들이 먼저 사라져야 하는 것이 순서 아니오리까. 제 눈에 대들보를 보지 못하는 저들을 용서하소서. 


신이시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넘치는 양식을 독차지하고 우리와 다른 이웃에게 내어주지 않습니다. 저들은 자기의 위장의 크기보다 더 많이 먹어댄 탓에 뒤뚱 데며 걷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걸음을 비웃습니다. 우리도 음식 쓰레기가 넘치는 도시의 생활에 점점 비만해져 날아오르는 것이 귀찮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인간들이 욕심으로 부풀린 자신의 몸뚱이를 생각하면 그들이 우리를 비웃을 입장이 아닙니다. 저들의 욕심을 내려놓게 하소서. 자신을 해하고 다른 이들을 굶기옵니다. 다른 이의 양식으로 끊임없이 욕망을 채우는 저들을 용서하소서.  


신이시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우리는 까마귀를 두려워하고 까치에게서 도망치고 간혹 참새들에게 조차 무시를 당하지만 결코 서로를 죽이지 않습니다. 저들은 같은 피가 흐르는 가족임에도 서로를 베고 죽입니다. 우리는 신의 메신저로 저들에게 바른 길을 알려주려 나타났지만 저들에게는 더 이상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저들은 욕심과 오만으로 저들끼리 죽이고 남들마저 죽입니다. 신의 소리에 귀를 막아버린 저들을 용서하소서. 


신이시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무한히 살기를 원합니다. 자연의 섭리를 어기고 자기 생에 한 치의 시간을 더할 수 있다면 다른 이들의 생명을 쉽게 앗아갑니다. 저들의 보양 목록에 우리 비둘기가 없음을 큰 다행입니다. 어느 날 우리의 살과 뼈가 저들에게 젊음을 준다는 소문이 난다면 저들은 한시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네 골수를 짜내어 목구멍으로 넘길 것입니다. 신이시여 자신의 욕망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저들을 용서하소서.


신이시여 우리를 용서하소서. 

우리는 당신의 목소리를 전달하였으나 더 이상 듣는 이가 없었나오이다. 신의 목소리를 들는 이를 찾아 더 많은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우리가 저들보다 높은 곳에 있어 우리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일까 우려하여 더욱더 낮은 곳으로 내려왔습니다. 하루 종일 저들의 발치에서 서성이고 돌바닥을 쪼으며 우리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어느 때처럼 우리의 구구 소리 안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그가 나타나 이 지구를 구하기를. 그러니 신이시여 우리를 용서하소서. 한치의 가망도 없는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우리의 미련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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