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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Nov 04. 2024

미니멀라이즈드 호비

내가 찾은 취미들 

최근 몇 년 간 나의 취미는 점점 간소화 되어가고 있다. 간소화된 취미는 여러 장비가 필요 없이 언제 어느 곳에서나 즐길 수 있는 일들이다. 미니멀리즘의 시대에 맞게 꽤나 미니멀라이즈된 호비들이다.  


어릴 적에는 플루트를 배우고 피아노도 배웠다. 대학 즈음에는 기타를 쳐보려 노력을 해 보았지만 나는 악기에 별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 취미를 붙이지 못한 이유는 단순하다. 우선 내가 선택한 취미가 아니었다. 어려서는 엄마가 시켰거나, 대학생이 되어서는 주변에 기타 고수들이 많아 나도 응당 기타를 좀 튕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겉멋 같은 것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악기나 음악 자체에 동기가 없으니 잘하고 싶은 욕심도 이내 사라져 버렸다. 무엇보다 그 시대 젊은이들에게는 기타를 튕기고 보내는 것보다 재미난 일들이 사방에 넘쳐났다. 시간을 쏟아붓지 못하고 손가락만 죽어라 괴롭히던 악기들은 하나둘씩 장식품이 되어 어느 순간 사라져 갔다. 


운동을 취미로 가지지 못한 이유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몸치였기 때문이다. 좋아하지 않으니 잘하게 될 수 없는 일들도 있지만, 잘하지 못하니 좋아하게 되지 못하는 일도 있다. 운동은 나에게 그런 일이다. 나는 끈기가 부족하여 무언가 지긋이 시간을 들여 배우 지를 못하고 조금 하다가 이내 실증을 느꼈다. 오래 하지 못하니 잘하지 못하고 잘하지 못하니 재미가 없다. 그러니 꾸준하게 취미랄 수 있는 운동을 가지지 못했다. 한동안 골프를 열심히 쳐 볼까도 했는 데 이런저런 귀찮음 탓에 헨디를 세는 것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시들해져 버렸다. 


게임이나 경기 등 남들과 함께하는 운동을 취미로 만들지 못한 이유는 내가 남들과 함께 팀을 이루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누구나 주목받고 싶은 욕심과 욕먹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낀다. 그런 느낌에 유독 민감한 사람들이 있는 데 내가 그들 중 하나이다. 야구, 농구, 축구 등 팀을 짜서 하는 운동을 하면 나는 나의 실수로 팀이 실점을 할까, 혹은 내가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지나치게 걱정이 많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나 관객들의 혹은 팀원들에게 칭찬받고 싶다는 허영심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건 데 허영과 불안 사이를 오가는 피곤한 마음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운동을 꺼리게 된 것이 아닐까. 


나는 살아오며 줄곧 정적이며 혼자 하는 취미를 즐겼던 것 같다.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말이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순간부터 익숙해진 행동 패턴이 생기고 약하게 생겨난 성향이 패턴의 반복으로 인하여 점차 강화되어 온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체육 시간과 교과목에 들어 있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운동과 취미들이 있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휩싸여 다닐 때에는 그다지 내키지 않아도 덩달아하게 되는 취미가 있었다. 조금 나이를 먹고 나서부터는 스스로 편한 소일거리만 찾게 되고 자기가 편안한 취미를 가지게 된다. 잘 못하고 싫은 것은 피하고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골라서 하니 성향도 성격도 취미도 한 방향으로 굳어간다.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나는 여러 가지 취미들을 시험해 보았다. 그리고 그들 중 몇 가지를 나의 평생의 취미로 가지기로 확정 지었다. 결국 나의 몸에 맞는 취미들이다. 그것은 명상, 그림, 글쓰기 그리고 걷기이다. 최근에는 달리기도 하여 짧은 마라톤에도 참가했지만 이것이 나에게 평생 할 수 있는 취미인지는 아직 자신이 서지 않는다. 당구도 좋아하고 가끔씩 큐를 잡지만 연구를 해 가며 열심히 칠 마음은 들지 않는다. 팬데믹 기간 중에 다시 피아노도 쳐보고 우쿨렐레도 쳐 보았지만 역시 소질이 없는지 끈기가 없는지 잠시 뿐이었다. 악기 탓이냐 내 탓이냐를 따지지 말고 그저 이번 생에는 서로 연이 닿지 않는 것으로 하자. 또 하나 내가 즐거움으로 여기는 일은 여행이다. 주말이면 혼자서 당일치기 여행을 하고 가끔 가족들과 아주 길게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여행이란 너무나 복합적인 일이어서 취미가 여행이오라고 말하기에는 그중에 무엇을 좋아하는 것인지 모호함이 크다.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는 것이나 호텔에서 자는 것이 취미라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나의 취미들은 특별한 장비가 필요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명상을 할 때는 방석 한 장이면 충분하고 그림도 글도 꼭 장비를 챙기지 않고도 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어디서든 적고 그릴 수 있다. 낙하산이 필요한 스카이 다이빙이나 무거운 클럽을 들고 다녀야 하는 골프에 비하면 얼마나 홀가분한 취미인가. 언제 어디서나 틈틈이 할 수 있으니 의지만 있다면 실력도 향상될 것이다. 또 이 취미들은 생각을 굴리는 일이니 내키지 않는 가족 모임에 참석했을 때 지루한 티를 내지 않고 머릿속으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는 상상의 발로인 동시에 생각의 기록이다. 취미의 결과는 종이 위에 기록으로 남겨지고 기록은 시간의 흐름만큼 쌓여간다. 취미의 결과가 자기가 만든 콘텐츠로 남겨진다는 의미에서 세상에는 무용하나 스스로에게는 꽤나 생산적인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오늘도 나의 취미 활동을 마친다. 마라톤을 뛰는 사람이 헐떡거림을 지나 쾌감을 느끼듯 글을 쓰는 일도 무얼 써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 무엇이든 써지는 것을 보고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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