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청춘은 없다
나이와 입장을 떠나 사람을 만나보자
오늘 아침 서울의 기온은 드디어 영하로 떨어졌습니다. 아침에는 올해 처음으로 가디건을 입었고 머플러를 두르고 모자를 쓰고 나섰습니다. 아직도 겨울 옷을 꺼내어 놓지 않은 탓에 한참 옷장을 뒤져야 했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계절이 올 줄 누가 알았나요. 나이도 그렇습니다. 지난주 고등학교 졸업 30주년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무대 정면에 걸린 플랜카드에 '영원한 청춘'이라고 쓰인 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 나이가 벌써 저런 나이가 되었나. 청춘을 들먹거리는 것은 스스로 청춘이 아니라는 반증입니다.
사뮤엘 울만의 시 <청춘>을 보면 노년의 사람들이 얼마나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이 말하는 청춘은 중년이 되어 돌아본 청춘의 모습입니다. 이미 지나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은 그저 아름다움으로만 기억됩니다. 첫사랑은 안그렇던가요? 시 속에는 청춘의 아름다움 모습만 보이고 나머지는 쏙 빼어 버렸습니다. 노년의 정신 승리입니다. 청춘이 어디 그렇게 진취적이고 아름답기만 한 시기인지요? 청춘의 실상은 미숙하고 충동적입니다. 지나치게 감상에 빠져 자학을 일삼기도 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사랑에 빠져 눈이 멀거나 이별로 덧없는 괴로움 속에서 허덕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친구들과 술을 하시며 시간을 탕진하고 지냅니다. 아, 물론 저의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청춘이란 무식하여 용감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한없이 찌질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좌충우돌이 허락된 시기이니 노인들이 청춘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밖에요. 하지만 정작 진짜 청춘은 청춘이란 말을 굳이 떠올리지도 않습니다.
한국처럼 나이에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처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넓고 깊게 새겨진 문화도 없을 것입니다. 아침에 체육관에서 뛰고 있으면 에어로빅실에서 노래 가사가 흘러나옵니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사랑을 하면서도 나이에 대하여 변명을 해야 합니다. 혹시 누가 핀잔이라도 놓을까 봐 미리 나이에 대하여 방어막을 칩니다. 자꾸 나이, 나이 하는 이들을 보면 스스로의 나이를 핑계로 고정관념 속에 숨어 버리려는 의도가 아닐지 매우 의심스럽게 바라보게 됩니다. 또래를 만나면 부쩍 나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립니다. "우리 나이에", "나도 이제 나이가 있잖아" 등의 말을 듣는 데 그 말들 뒤에는 나이를 핑계로 진작에 도전을 포기하고 안주하려는 변명이 시작됩니다.
저는 요즘 인간관계에 대하여 새로운 시도를 해 보려 합니다. 사람을 대할 때 나이나 직위에 따른 고정관념을 버리고 모든 이들을 대등한 입장에서 대하여 보자는 시도입니다. 나라는 사람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나이와 직위, 사회적인 입장 등으로 사람들을 구분하고 이들을 내가 생각하는, 혹은 사회에 정해진 '적절할 태도'로 만나며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연장자, 선배, 상사로서, 후배와 부하로서 혹은 거래처의 갑과 을로서 정해진 고정관념과 이를 바탕으로 한 태도와 말투로서 사람을 만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이와 지위고하를 떠나 무전제로 상대를 만나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 나이 타령입니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와 비슷한 위치의 사람들,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훨씬 더 편해지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선 나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작업을 먼저 해 보려 합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존중은 남기고 혹은 갖추고, 권위가 주는 달콤함과 권위에 대한 두려움은 내려놓으려 합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만 꾸준하게 무전제로 사람들을 만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바람처럼 자유롭고 솜털처럼 편안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청춘 타령입니다만, 청춘이 아니어도 인간은 자신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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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춘
- 사무엘 울만 (1840~1924) -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
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
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 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
그대와 나의 가슴 속에는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있어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雪]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氷]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Youth
- Samuel Ullman (1840~1924) -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it is not a matter of rosy cheeks, red lips and supple knees; it is a matter of the will, a quality of the imagination, a vigor of the emotions; it is the freshness of the deep springs of life.
Youth means a temperamental predominance of courage over timidity of the appetite, for adventure over the love of ease. This often exists in a man of sixty more than a body of twenty. Nobody grows old merely by a number of years. We grow old by deserting our ideals.
Years may wrinkle the skin, but to give up enthusiasm wrinkles the soul. Worry, fear, self-distrust bows the heart and turns the spirit back to dust.
Whether sixty or sixteen, there is in every human being's heart the lure of wonder, the unfailing child-like appetite of what's next, and the joy of the game of living. In the center of your heart and my heart there is a wireless station; so long as it receives messages of beauty, hope, cheer, courage and power from men and from the Infinite, so long are you young.
When the aerials are down, and your spirit is covered with snows of cynicism and the ice of pessimism, then you are grown old, even at twenty, but as long as your aerials are up, to catch the waves of optimism, there is hope you may die young at eigh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