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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Nov 21. 2024

서울 전시 2일 차

일찍 사무실에 들러 전시장에 가지고 가야 할 것들을 챙겼다. 하루 늦게 도착한 엑스 베너, 생각보다 일찍 다 써 버린 상품소개서, 샘플을 나누어 주기 위한 비닐봉지 등등. 우편함에 꽂힌 일간지 두 개를 들고 와 바쁘다는 핑계로 읽지 못하고 책상 위에 쌓아 놓은 지도 일주일이 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매일 아침 신문을 읽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내가 꼭 얻어야 할 최신의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실은 최신의 정보란 이미 손쉽게 손 안의 핸드폰 안에서 언제라도 얻을 있다. 나에게 신문을 읽는 목적은 종이 위에 빽빽하게 적힌, 누군가에 의하여 편집된 정보들을 읽으며 그 속에서 우연히 유용한 정보를 얻거나 간혹 쓸만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책상 위에 뒹굴고 있는 고지서가 신경 쓰여 온라인 뱅킹으로 신문 구독료를 냈다. 나는 읽지 못하여 신선함을 잃어버리고 있는 신문이 아까워 오늘 신문의 경제란을 펼쳐 마지막에 달린 <오늘의 운세>를 읽었다. 오늘의 운세란 최신의 정보라기보다는 오늘만 유용한 정보이다. 막 썰어 나온 사시미 같은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횟감도 내일이면 먹을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만다. 나의 띠의 오늘의 운세는 '결정하기 전에 생각 많이 하자'이다. 나는 요즘 베트남의 파트너 사를 결정하기 위하여 여러 업체들을 저울질하고 있고 오늘은 전시장에서 한 업체와 화상회의가 잡혀 있다. 일간지 한편의 운세란에서 어떻게 이런 시의적절한 조언이 가능하단 말인가!


온라인 매체가 나오기 전, 신문은 정보량 대비 가장 싼 매체라고 불렸다. 전자책이 나오고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라 했지만 종이책이 여전히 건재한 것처럼 온라인 매체가 최신 정보를 실시간으로 쏟아내지만 종이 신문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것은 그 매체로 정보를 얻는 습관이 몸에 베인, 소위 구시대 사용자들이 새로운 매체로 전환을 거부하고 구시대의 매체에 천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 매체가 주는 독특한 매력과 이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력은 세대가 지나면 희석되는 대체될 수 있지만 이점은 매체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가 되어준다. 신문의 매력은 종이에 인쇄된 아날로그적 감성이다. 한편 신문의 이점은 관심 외의 정보와의 우연한 접촉이고 이런 정보의 습득 중에 간혹 떠오르는 새로운 발상들이다. 세상에 대한 통합적인 혹은 균형 잡힌 관점을 가지게 된다면 더 좋겠지만 요즘처럼 언론이 편파적이어서야...


알리바바 등의 플랫폼이나 이메일 교환을 통하여 비대면으로도 바이어 혹은 서플라이어를 찾는 것이 가능하다. 기술적으로는 비대면의 사업이 충분히 가능해졌다. 십 수년 전부터 비싼 출장비와 체재비가 드는 오프라인 전시가 사라지고 B2B 온라인 플랫폼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는 말이 무성했다. 팬데믹 기간에는 실제로 온라인을 통한 비즈니스 매칭이 오프라인 전시회를 대신하였다. 안 해본 것을 해 보니 되더라는 것이다. 이제 이전과 같이 높은 비용의 오프라인 전시회는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팬데믹이 끝나고 다시 열린 전시에는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업적인 거래란 단지 조건을 맞추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 간의 느낌(캐미)을 맞추는 일이이다. 또한 전시란 얼굴을 보고 믿을 만한 사람인가를 확인하고, 인간적인 매력으로 홀리거나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현장에서 가격과 조건을 밀고 당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사업을 하는 스타일도 참 다양하듯이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란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캐릭터를 지녔다. 전시 현장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민첩하게 진성 바이어를 찾아내어 제품을 소개하여야 한다. 전시를 수 없이 나가다 보면 부스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발걸음만 보아도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 대강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감이 좋아졌다라든가 판단력이 빨라졌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종의 편견으로 사람을 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편견이란 편한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가 편견에 수렴한다. 그렇기에 편견은 사라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명함을 교환했다. 우리 제품과 맞는 바이어를 찾는 일이니 상대방의 회사도 보고 조건도 따지지만 동시에 상대방의 캐릭터도 파악하여야 한다. 소위 도둑놈 심보를 가진 이들과 사기꾼들을 걸러내는 것은 현장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서로 나누어 보고서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도둑놈을 만나고 사기꾼에게 속는 일도 현장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벌어지는 일들이다. 지뢰를 피하고 나서도, 다른 나라에서 내 물건을 팔아줄 사람을 만나는 데 능력을 우선으로 할지 인간성을 우선으로 할지는 항상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물건을 파는 데 굳이 인간성까지 보아야 하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됨됨이가 별로인 사람들하고 일을 하면 언젠가는 사이가 틀어지거나 배신을 당하는 일이 왕왕 벌어지고, 반면에 인간성이 좋은 데 능력이 별로인 사람과 거래를 하면 서로 허허거리기만 하다가 수년이 지나도 이렇다 할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조만간 사업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빠르게 짱구를 굴리고 눈치 좋게 밀려드는 사람들 속에 진성 고객을 찾으며 하루 종일 얍싹 바른 시간을 보냈다. 전시 시간이 종료되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오징어 게임에서 나오는 안내 방송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로한 몸을 이끌고 고깃집으로 향했다. 전시장 건너편은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먹자골목이다. 우리는 힘을 내자며 비싼 고기를 먹었다. 이렇게 하루가 지났다. 오래 서 있어서 발바닥이 아프지만 나에겐 몸을 뉘일 푹신한 침대가 있다. 그거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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