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출근 시간에 전철을 탔다. 생각해 보니 나는 정말 그동안 일반적인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에 맞추지 않고 살아왔다. 나의 보통의 출근 시간은 아침 7시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운동하고 여유로이 출근하는 시간이니 나는 아침형 인간임이 분명하다.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이 마치 성공의 필수 조건인 양 생각되던 때가 있었지만 아침형 인간이 올뱀이족보다 부지런하다는 말도 부지런한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도 모두 믿을 것이 못된다.
나는 직장이 집과 가까울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첫 직장은 꽤나 먼 곳이어서 회사에서 운영하는 통근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지각을 할까 봐 서두르는 것이 싫어 거의 매일 아침 첫 버스를 타고 출근했는 데 퇴근할 때는 심야 막차를 타거나 번번이 택시 신세를 지어야 했다. 그러고도 주말에 불려 나가 월화수목금금금을 실현했으니 요즘의 젊은 직장인들은 내가 야근수당으로 집이라도 샀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 시절에는 야근이 수당 없이 당연했고 주말 근무도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한국의 직장 문화는 정말 빠르게 바뀌었다. 지금 시대에 직원에게 '나 때는 말이야'하며 그때처럼 긴 시간 회사를 위하여 일해 줄 것을 원한다면? 야근과 주말 수당에 교통비까지 추가된 긴 청구서를 받거나 직원이 인사도 없이 회사를 떠날 것이다. 이제는 직원에게 내 회사처럼 일해주기를, 회사를 위하여 몸을 갈아 넣는 그런 기대를 하면 안 되는 시대이다. 주어진 시간보다 더 일해 주기를 바라는 심보도 버려야 한다. 성과에 대한 명확한 보상 기준이 없다면 어찌 되었던 직장인들이 회사와 바꾸는 것은 자신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인센티브를 주던, 잘 감시하던, 아니면 잘 구슬려서 약속된 시간에 회사를 위하여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것은 사장의 역량이고 시간 외의 시간을 공짜로 일해주길 원한다면 이 또한 도둑놈 심보가 아닌가. 그런데 가끔 도둑놈이 되고 싶은 것이 사장 심보이다.
안국역에서 우르르 탔다가 봉은사역에 우르르 내려 코엑스 전시장에 도착했다. 전시 시작 두 시간 전이지만 첫날이어서 인지 준비를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다. 나는 사무실에서 가지고 간 베너를 벽에 걸고 테이블에 상품들을 진열했다. 모니터를 컴퓨터에 연결해 홍보 영상을 틀었다.
정확하게 1년 전 이 전시장에서 첫 제품 하나를 가지고 전시에 참가했던 기억이 났다. 함께 사업을 하는 친구와 어찌어찌 만들어낸 첫 번째 상품을 가지고 전시에 나왔는 데 제품을 아직 온라인샵에도 올리지 못한 상태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침마다 끌차 가득히 물건을 싣고 와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그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뿐이었다. 막 만들어진 제품 달랑 하나를 가지고 부스를 차려 나온 우리는 그저 무어라도 열심히 했다. 답이 정해진 것도 우리의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무엇이든 해보면서 방법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우리는 오늘 4가지 제품을 추가로 출시하며 우리는 총 10개 제품을 운영하게 되었다. 여전히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지만 1년이란 시간 속에 많이 노련해졌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고 그래서인지 이런저런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느긋함이 생겨났다. 스스로 치하하며 무엇보다 지난 1년 동안 나의 모자란 부분을 앞뒤로 챙겨주며 함께 사업을 키운 나의 T형 친구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고맙다, 친구야.
전시가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전시장 안에 거대한 에너지장이 생겨난다.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들 모두 가장 좋은 거래 상대를 고르기 위해 각자의 가장 좋은 모습들을 보여주고, 서로 이야기하고 눈치 보고 밀고 당기며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 에너지가 생겨난다. 그러니 전시장은 거대한 시장이 되고 사람들의 활기가 넘쳐흐른다. 사람들의 말은 노래가 되고 몸짓은 춤이 된다. 전시가 거대한 축제처럼 느껴지는 이유이다.
어제만 해도 전시 부스의 위치가 좋다고 좋아했는 데 막상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부스를 찾으니 정신이 하나 없고 손이 모자랐다. 배부른 소리다. 기억해 주고 찾아 주는 사람이 있는 것은 즐겁고 반가운 일이다. 사람들이 찾아와 제품을 좋아해 주고, 두세 번 찾아와 좋은 소리 해주면 은근히 어깨가 올라간다.
축제의 첫날을 마쳤다.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출근 시간 전철처럼 우르르 몰려왔다 우르르 밀려갔다. 사람들이 떠난 전시장에는 샤프의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가사처럼 정적만이 남는다. 축제 속에 전력으로 몸을 맡긴 이들에게는 피로가 급속도로 몰려 오지만 힘을 남기지 않고 싸운 복서처럼 마음은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