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호 Nov 19. 2024

Chat Baker를 듣는 밤

Ashes and Fire

아침에 체육관에서 잠시 뛰고 사무실로 나왔다. 머리가 시려 오는 날씨가 되었다. 바닥에는 많은 은행잎들이 떨어져 이리저리 쓸려 다니지만 나무를 올려보면 아직도 제법 많은 나무들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아니, '매달려 있다'는 표현은 왠지 남은 잎들이 가지 끝을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는 느낌이니, 다시! 나무를 올려다보면 여전히 많은 잎들이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이 계절을 높은 곳에서 만끽하고 있다. 그들도 어느 시간이 되면 바람에 몸을 실어 땅으로 가볍게 내려앉을 것이다.


나무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삶의 변화와 순환을 아주 짧은 주기로 보여준다. 나뭇잎을 삶에 비유하면 바닥에 떨어진 잎들은 지나온 날들이고, 나무에 붙어 있는 잎들을 남아있는 시간이다. 누군가 기왕 떨어질 것 한꺼번에 다 떨어져 버려라는 기분이거나 가을이 왔는 데 여름의 푸르름이 그리워 잎의 색이 변하지 않고 떨어지지도 않기를 바란다면, 이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일 뿐 아니라 이런 심보로는 계절의 변화와 그 계절에 맞는 나무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삶과 시간의 흐름은 불가역적이다. 그저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수밖에. 떨어진 잎 같은 지나간 날들은 지나간 대로 아름답게 바라보고, 또 가지에 남은 누런 잎처럼 자기에게 남은 생을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현재를 살고 계절의 아름다움을 본다.


나는 업무 상 자주 외국 바이어들과 화상회의를 한다. 화상회의를 중에 컴퓨터 화면에 비추는 나의 얼굴을 우연히 보고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나와 꽤나 닮은 웬 중년 아저씨가 이상한 표정으로 상대의 말을 듣고 있다. 이런 의도하지 않은 표정이 평소에 스스로에게 보이지 않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볼 때 마치 사진기를 들이대며 하나, 둘, 셋! 하는 것처럼 나름대로 긴장하고 준비된 모습으로 거울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가 보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만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들으면 영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것처럼, 우리의 머릿속의 자신의 얼굴이란 실재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떠올려 보면. 나는 한 서른 살 즈음의 얼굴로 내 얼굴이 떠오른다. 머릿속 영상 속의 모습과 지금 나의 모습은 상당한 괴리가 있지만 나는 나의 영상을 수정 혹은 보정할 계획이 전혀 없다. 또 나만 보는 머릿속 영상이라고 일부러 스스로를 더 젊게 만드는 것도 주책이라 싫다.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다. 나는 길을 지나다 평생의 웃음을 엿바꾸어 드신 근엄한 얼굴이나 화가 잔뜩 난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지나는 아저씨들을 보면 내가 그런 얼굴이 될까 덜컥 겁이 난다. 그래서 나는 요즘 부드러운 사람, 친절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 정말 의도적인 노력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말하기, 부드럽게 힘을 빼고 말하려 노력한다. 땅을 사라는 스팸전화를 받거나 의도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불친절한 상대에게도 최대한 친절하고 부드럽게 말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니 그야말로 안간힘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화를 꾹꾹 참아 나중에 화병이 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보니 점점 더 화가 잘 나지 않게 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 나이에 따지고 들며 싸우는 쌈닭질은 점잖지 못한 일이다. 부드러운 사람이 되자.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 편한 사람이 되자. 바람처럼 가벼운 사람이 되자.


가을인지 겨울인지 모를 서늘한 밤이다. 쳇베이커의 음반을 듣는다. 오늘에서야 친한 벗이 왜 그리도 쳇베이커의 음악을 좋아하는 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는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깊어지고 나서야 드디어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드디어... 마침내!

  

 



매거진의 이전글 지구 별 겨울 구역의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