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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Nov 28. 2024

삶의 로고송을 만들자

우리를 지켜주는 구호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어떤 날에는 아침에 깨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익숙한 멜로디 하나가 입에 붙어 계속 흥얼거리기도 한다. 이런 음악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한 번 떠오른 음이 머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두개골 안에서 난반사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렇게 무의식적이고 무의미한 반복이 있는 가 하면 나에게는 상황에 따라 떠오르는 음악들이 있다. 어떤 장면에서 익숙하게 떠오르는 일종의 삶의 로고송들이다.


나는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유치원을 나왔다. 당시 유치원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 모르지만 지금도 청담동 모처에서 운영 중이니 내가 다녔다는 것만으로 미루어 추정컨대 족히 40년이 넘은 유치원이다. 점심시간이 따로 있었는지 간식 시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당시의 일곱 살 아이들은 항시 기도를 하고 음식을 먹었다. 얼른 집어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감사의 기도를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함께 인내를 가르쳐주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아멘.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지금도 맛있는 음식을 볼 때 이 노래가 떠오른다. 이 노래의 가사는 양식을 주신 분에 대한 감사의 기도이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감사의 대상이 명확한, 아주 대단한 기도문이다. 긴 기도를 짧게 그리고 빨리, 노래 한 곡으로 마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감사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맛있는 양식을 먹을 수 있음을 나의 수고가 아닌 신의 은총으로 돌리고 짧은 기도 간에 참았다 먹는 음식은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오늘은 회사의 신제품이 담긴 샘플 박스를 거래처에 보냈다. 신제품을 회사 로고가 박힌 박스에 정성스럽게 담고 제품의 설명이 담긴 브로셔와 엽서를 별도에 비닐 파일에 담아 박스 안에 넣는다. 그 비닐 파일 안에는 바이어들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다. 그간의 성원에 감사하며 이번에 출시한 제품에도 관심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편지는 특별히 질이 좋고 두꺼운 종이에 프린트하고 비닐 파일과 샘플박스에는 회사의 로고 스티커를 붙인다. 마치 결혼식 답례품이나 귀한 선물을 받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이다.


신제품 샘플 박스를 만들거나 거래처에 샘플을 보낼 때 내가 가지려는 자세는 '지극한 정성'이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일본인들이 지향하는 극진한 접대 정신인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의 자세로 일하려 노력한다. 샘플을 박스에 넣어 보내는 일이 별것 아닐 수 있도 있고 혹은 귀찮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 일이 회사의 정신을 담아 받는 이에게 헌정하는 일이라 생각하면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샘플 박스를 만들 때 나의 노래는 이러하다.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



아직도 KBS가 이 로고송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정성을 다하는'의 경건한 음조는 왠지 정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그려질 정도로 가사의 의미에 어울리는 음이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들은 이 로고송은 내가 정성을 다하려는 순간에 머릿속에서 튀어나와 입안에서 맴돈다.


우리의 신념이 담긴 짧은 구호들이 바르고 성공적인 인생을 만든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항상 정직해라 등등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바른 기준은 긴 설명도, 거창한 미사여구도 필요하지 않은 아주 단순한 구호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는 그 구호들을 삶의 순간순간 되새기어 스스로를 돌아보고 또 응원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 구호들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리게 하는 것이 신념이 담긴 로고송이 아닐까.

   

삶의 올바른 방향을 찾아내고 이를 단순하지만 예리한 몇 마디 구호로 만들어 가슴에 품고 산다면 이 구호는 그의 삶을 지켜주는 만트라가 될 것이다. 또 그 촌철의 구호를 자기만의 로고송으로 만들어 입에 달고 다니면 결코 길을 잃지 않으리라. 나는 요란한 타투로 팔뚝에 구호를 새기기에는 좀 늦은 나이이니 입에 착 붙고 뇌리에 떠나지 않는 로고송이나 하나 만들어 입에 달고 다녀야겠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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