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호 Nov 30. 2024

오늘의 우리를 기억하며

새벽에 일찍 체육관으로 나섰다. 오늘은 아침부터 서울 날씨가 영하권이다. 추운 날일 수록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운동을 하러 체육관에 가는 일이 힘들다. 우리 몸은 더 따뜻한 곳, 더 편안한 곳에 머무르기를 원한다. 얼마 전 들은 차인표 선생의 강의에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목표를 너무 길고 높게 잡지 말고 오늘 하루만 해보자고 해보세요. 운동도 금연도 금주도 오늘 하루는 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오늘을 해 보는 겁니다"


커피를 사 들고 사무실로 와 어제와 오늘의 신문을 읽었다. 겨울에는 커피를 사 와 바로 보온병에 옮겨 담고 커피를 담아 온 종이컵에 조금씩 덜어 마신다. 오랫동안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이다. 아침밥 대신 커피를 마시며 빵을 먹거나 사과를 깎아 먹는다.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신문을 보고 커피를 홀짝이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 중 하나이다.


원래 대로라면 어제 중국으로 들어가야 했을 친구가 폭설로 비행기를 놓쳐 오늘 늦은 오후 비행기를 잡고 출근을 했다. 우리는 안국에서 가장 맛있는 정식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매일 긴 줄 때문에 지나친 적이 많았는 데 오늘은 운 좋게 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호박이 들어간 고추장 찌개, 깔끔하게 찐 보쌈, 명태무침, 명란젓과 함께 나오는 두부를 주문했다. 이 집의 뛰어난 음식을 두고 어느 지방 음식인지 내기를 한 적이 있는 데 정답은 전라도 음식이었다. 한국에서 맛있는 음식이 나온다면 우선 전라도를 떠올리고 볼 일이다.


은행 업무를 보고 태국 바이어와 화상 회의를 하고 다시 바로 국내의 바이어가 찾아와 릴레이 미팅을 하였다. 사무실에 온 손님이 돌아갈 때면 나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마중을 나오는 데,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 난 큰 창으로 북악산과 그 밑에 자리한 경복궁, 청와대, 북촌 한옥 마을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마중을 나서는 것은 돈 드는 일이 아니지만 우리 회사를 찾아온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을 설명하면 사람들은 우리 회사를 더 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들이 안국동에서 모였다. 고등학교 동창인 우리 네 사람은 각각의 성을 따서 스스로를 '민박이박'이라 스스로를 칭하고 어린 시절 자주 여행을 다녔다. (민)은 준수한 외모를 지녔다. 게다가 머리가 좋아 멘사 회원이다. 그와 몇 마디를 나누어 보면 금세 그의 머리 회전이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굴지의 기업의 임원이다. (박)은 키가 크다. 슬램덩크의 채치수를 닮은 박의 키는 190에 육박한다. 그는 한국의 최고 지성이다. 생명 공학 박사이며 스타트업에서 인류를 위한 연구를 한다. (이)는 샤프한 외모를 가졌지만 무척이나 인간적인 인물이다. 삼국지의 등장인물 중에서 그의 역할을 꼽으라면 나는 그를 유비로 꼽을 것이다. 글로벌 기업의 투자를 담당하며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 쌓여 산다. 마지막 (박)은 나이다. 안국에 살고 자영업을 한다. 더 이상 말하면 자화자찬이 될 터이니 스스로에 관해서는 이상의 설명을 생략한다.


 우리는 인사동 모퉁이에 자리한 해물 한 상 요릿집에 모였다. 이렇게 넷이 모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문득 우리 넷이 제주도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민박집 아저씨의 설명대로 제주도 둘레를 돌고, 한라산을 넘는 도로들을 따라 버스를 타고 돌아다녔다. 눈이 무릎까지 쌓인 한라산을 아이젠을 차고 올라 백록담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사진이 한 장 남아 있다. 그 사진 속에는 우리들 눈에만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30여 년 전 앳된 얼굴들이 담겨있다.


사는 이야기, 즐거웠던 이야기, 주변의 이야기와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간이 흘렀다. 좋은 음식에 어울리는 이야기들이다. 어릴 적처럼 밤새 마시지 못하여 우리는 당구를 쳤다. (민)과 (박)이 한 편이 되고 (이)와 또 다른 (박)이 편을 먹었다. 동네에 놀러 오신 손님들 즐거우시라고 그간 닦아 놓은 실력을 숨기고 당구를 져 주었다.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친구들의 기쁨이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은 그만하고, 패자는 카운터로!)


언젠가는 다시 '앳된 얼굴'의 사진으로 기억될 또 하루가 지난다. 아듀 오늘 하루, 굿나잇 에브리바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