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창 밖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어제저녁 술자리에서는 오늘 즈음 첫눈이 올지 모른다는 카더라 뉴스가 돌았다. 유난히 길고 더운 여름을 지나고 낙엽이 휘날리는 가을이 온 것이 지난주 같은데 가로수 나뭇잎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정말 오늘 첫눈이 내렸다. 게다가 폭설이다. 서울 경기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때마침 지방 출장이 있는 날이다. 친구가 모는 차를 타고 평택으로 향했다. 상담을 하러 가는 목적지가 안성의 휴게소이니 가장 빠른 길이 고속도로이고 유일한 길 또한 고속도로이다. 창 밖으로는 눈보라가 몰아치고 차선은 곧 쌓인 눈에 덮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안성 휴게소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이불솜 같은 눈이 금세 어깨에 수북이 쌓였다. 미팅은 길지 않았지만 새로운 시장을 시도하는 의미가 있었다.
우리는 두 번째 미팅 장소로 가기 위해 다시 고속도로에 올랐다. 이번에는 위례로 가는 상행선이다. 우리의 차는 고속도로에 올라 얼마 안 되어 꽉 막힌 차도에 갇혔다. 고속도로 곳곳에서 갑작스럽게 내린 눈으로 접촉사고가 나거나 차가 눈 길에 미끄러져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평소에 한 시간이면 올라올 거리를 세기간이 걸려 강남에 도착했다. 아주 오랫동안 벼려온 미팅을 마쳤다. 느낌이 좋다.
원래는 그 사이 다른 업체도 한 곳 더 들르고 안국동 사무실로 돌아와 베트남의 바이어와 화상 회의를 할
계획이었지만 저녁에 다시 강남에서 미팅이 있었기에 우리는 서초동 사무실에서 화상회의를 했다. 우리는 공간을 넘어 서로 얼굴을 보고 말할 수 있는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조금의 밀당이 있었지만 의기투합하며 미팅을 마쳤다. 아 열심히 하고 같이 잘 살자고 하는 일이다.
저녁에는 압구정에서 열린 네트워크 파티에 참가했다. 인플루언서들과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을 매칭하여 마케팅 시너지를 만들려는 자리이다. 나는 행사에 제품을 후원한 이유로 초대받았다. 스텐딩 파티같이 낯선 사람들이 모여 무작위로 인사를 나누는 자리는 불편하다. 불편하여 말이 없어지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왠지 텐션이 높아져 설레발을 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연예인 병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난다면 역시 나는 가운데 곱창전골 같은 것을 하나 끓이면서, 지긋이 소주잔을 부딪히며 천천히 상대를 알아가는 편이 더 편하다. 늦은 시간에 시작하는 본행사가 시작하기 전에 얼른 인사를 하고 나왔다.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벗어나는 것 만으로도 큰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집이란 언제나 좋지만 추운 날씨에는 더욱 집이 최고다.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 속에 나오는 별돌로 단단하게 지은 집은 우리를 늑대로부터 지켜줄 뿐 아니라 집 밖의 추위로부터도 지켜준다. 집에 들어오니 스르르 긴장이 풀리고 피로가 몰려온다. 뜨끈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이문세의 노래를 듣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