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예술인과 만났다. 술자리였지만 나와 작가는 술을 마시지 않아 우리 둘은 1차에서 사이다, 2차에서는 콜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가는 회화와 설치미술, 가구 디자인과 브랜드 콜라보까지 경계를 넘나들며 자기 세계를 현실에 접목시켜 왔다. 지금은 인간의 기술의 발달과 함께 펼쳐질 상상 속 미래를 그의 작품의 모티브로 삼고 있다. 찜닭도 한 20년 찌면 대가가 된다면서요? 저도 이런 작업을 꾸준히 하다 보면 대가가 불릴 날이 오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자기 인식과는 달리 그는 이미 대가의 행보를 걷고 있다.
어떤 기술이나 수준이 대가에 이르는 시점과 무관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대가'가 되는 순간은 유명해지는 순간이다. 피카소는 어려서부터 대가로 인정받았지만 고흐는 그가 죽고 나서야 대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세간에서 유명해지는 순간부터 세상 사람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그가 살아온 과거가, 그가 만났던 연인들이 궁금해진다. 모두는 삶의 그늘이 있다. 유명인이란 그 그늘이 모두의 앞에 드러나는 것을 감당해야 한다.
유명해지는 순간, 갑자기 과거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나도 잊었을 법한 과거를 찾아내어 온라인에 박제한다. 내가 했던 말, 내가 하는 말이 때(time)와 장소(place)와 상황(occasion, TPO)에 알맞은 것인지 스스로 검열하여야 하다.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는 농담이나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발언은 금물이다. 그렇지 않아도 꼬투리를 잡으려 벼르던 안티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어 평판에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유명인들은 일반인들보다 더 높은 도덕관념을 요구받는다. 일반인이었으면 절대로 비난하지 않았을 작은 실수와 일탈에도 사람들은 그가 유명인이란 이유로 물고 뜯는다. 가끔 공인에 대한 불공평한 비난에 그를 변호하는 말을 해 보려 하지만 여론의 대세에 거스르는 일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런 것이 공인이다,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프라이버시를 침해받고, 그를 대하는 여론의 기준은 불공정하다.
나는 나의 일상을 사랑한다. 볕이 좋은 날 오래 길을 걸으며 산책을 하고 서점에 서가를 거느리며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가끔 북적이는 가게에 들어가 혼자서 치킨을 먹기도 한다. 내가 유명인이라면 편하게 할 수 없는 일들이다. 특히 나 때문에 함께 다니는 친구와 가족들이 덩달아 불편해지는 상황은 정말 피하고 싶다. 그러니 내가 아직 대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유명해지지 않은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불평을 하여서는 안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