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 화로 고생했다. 성질 머리 때문에 본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불쑥 터지는 화 때문에 제 것도 못 찾아먹고, 좋은 일하고도 화를 내어 괜한 원망을 산 적도 많다. 그래서 나이가 들며 '화'는 나의 삶에 큰 화두가 되었다. 화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꾸준히 명상을 했다. 온라인으로 하는 불교 대학을 다니며 마음공부도 하고, 명상 센터에 들어가 열흘 간의 명상 훈련도 경험했다. 200일간 매일 아침 108배를 하기도 했다. 그중에 무엇이 주요하였는지, 아니면 단지 나이를 먹으며 찾아온 호르몬의 변화 덕인지, 이전에 비하면 현격하게 화가 줄어들었다.
남자는 산속에서 10년을 꼬박 면벽 수행을 하였다. 맑고 평화로운 마음, 이제 더 이상 어떤 일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 금강석과 같은 마음을 얻었을 때 그는 산을 내려왔다. 그에게는 이제 죽는 날까지 평화로운 마음만 있을 뿐이다. 마을로 가는 길, 난데없이 누군가 나타나 그의 뒤통수를 냅다 갈겼다. 그 순간 10년 동안 마음 깊숙이 눌러 놓았던 증오와 살기가 마른벼락 치듯 번쩍하고, 마음에 불이 일었다. 10년 공부 도루아미타불이다.
화라는 것은 불씨와 같다. 작은 불씨가 피어오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면 금세 그 불씨를 잡아 없앨 수 있다. 하지만 그 한순간의 시간을 놓치면 불씨는 순식간에 온 마음에 번져 초가삼간을 활활 태운다. 남는 것은 후회와 과보뿐이다. 그래서 '내가 화가 났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그 순간 그 불길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화는 다분히 진정된다. 명상이 주는 알아차림의 효능이다.
그럼에도 화를 다스리기 힘든 것은 화가 인간이 가진 공격성과 연관이 있고 공격성은 짜릿한 쾌감과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은 이 공격성이 주는 쾌감 때문에 더 자주 화를 내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 욱하는 성질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욱욱하는 것은 단순히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오랜 시간 화를 분출하며 느낀 공격성의 쾌감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나의 화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돌아보면 창피하여 얼굴이 달아오르는 일들이 한 둘이 아니다. 애꿎은 화풀이 상대가 되어준 이들에게 미안하고, 그런 나를 용서해 준 이들에게 감사하다. 그렇게 후회와 각오 끝에 지금 나는 화에서 벗어났냐고? 그럴 리가. 예전처럼 아무 때나 버럭버럭 화를 내지는 않지만, 그래도 끄응하며 가슴을 누르고, 눈꼬리가 올라간 체 한숨을 쉬고, 결국에는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빨라진다.
10년 공부 도루아미타불이지만 뭐, 인간이란 그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