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강요하지 마세요.
소설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면 주변의 실재 인물과 너무나 비슷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성격이 존재하나 살다 보면 우리의 머릿속에 비슷한 인물의 유형끼리 묶이어 그들이 하나의 집단처럼 인식되기 때문이다. 마치 MBTI와 같다. 성격 유형을 납득하면 그들의 행동을 짐작할 수 있다.
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 유유상종이란 인간 사회의 현상이자 동시에 처세술이다. 살다 보면 주변에 비슷한 사람들이 주로 모인다. 성격과 행동유형이 비슷하니 함께 있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반면 그 편함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더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같은 이유로 자기와 다른 사람을 피한다.
이런 동류의 모임과 편향은 결국 다양성을 해친다. 다양성(diversity)이란 최근에 무엇보다도 높이 평가되는 가치 중 하나이다. 다른 성향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공존의 기본이 되고, 그 다양성 안에서 새로운 가치와 발견이 이루어진다는 면에서 창조와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으로 꼽힌다.
요즘 다양성의 공존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굳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붙어살며 서로의 차이를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매 순간 이해하고 긍정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 삶에 이득이 될까.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닌 이로운가를 따지면 딱히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내가 어릴 적 학교와 사회는 모두와 원만하게 지내는 것과 많은 친구를 사귀는 것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원만함은 평화를 가져 주었지만 자기주장을 지우고 옳음을 침묵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제 다양성이 원만함처럼 이 시대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강요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불편함을 긍정하고 참으라고 강요한다.
고양이와 놀아 보면 고양이와 강아지가 왜 친구가 되기 힘든가를 알 수 있다. 강아지는 환영과 우호의 표시로 꼬리를 흔드는 반면 고양이는 심기의 불편함을 꼬리로 나타낸다. 화가 나면 꼬기가 부풀어 오르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데 강아지는 이 필사적인 표현을 알아들을 길이 없다. 인간 사이에도 이러한 불소통이 존재한다.
다양성이 사회의 평화와 공존, 특히 약자와 소수자(minority)를 위하여 존중되어야 하는 가치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삶의 선택을 다양성이라는 이유로 차이에 대한 불편한 감정(그것이 보수적이고 고루한 문화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형성되어 버린 감정)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도 폭력적인 처사다.
나이가 들 수록 유유상종하게 된다. 성격도 굳어가고 굳이 불편함을 참아가며 나와 다른 사람과 어울릴 이유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늙어가는 것이라고 말해도 부정하기 힘들다. 다만, 스스로에게 한번 더 채근하여 본다. 조금 더 유연하게, 조금 더 너그럽게, 조금 더 합리적으로 세상을 보자 하고.
오늘은 제헌절이다. 어릴 적에는 분명 공휴일이었는 데 이제 쉬는 날이 아니다. 직장 생활할 때는 노는 날이어서 좋더니 사장이 되니 쉬는 날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공휴일의 호불호도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온종일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한 목요일이었다.